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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어린 화자가 열어젖힌 보편적 상상의 세계

입력 : 2014-07-24 21:06:44 수정 : 2014-07-24 21: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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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지 새 장편소설 ‘누나’ “새벽이 오기 전에 나무들은 길거리를 걸어다녔다. 우체국 앞 상수리나무도, 향교 앞 은행나무도, 신작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미루나무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길거리를 싸돌아다녔다. 바람이라도 부는 밤이면 나무들은 휘휘 소리까지 내며 걸어 다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흡사 밤늦도록 휘파람을 불며 동네를 누비고 다녔던 부랑자들 같았다. 나무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밤이면 나는 으레 오줌을 쌌다.”

나무들이 걸어다닌다. 소가 아이 뒤를 따라 학교에 간다. 도깨비가 키 큰 남자로 둔갑해 길가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씨름을 한 판 하자고 한다. 동네 할머니는 어릴 때 까마귀 눈알을 먹어서 귀신을 본다. 공동묘지에 사는 백년 묵은 여우는 무덤 속 시체를 파먹고 어여쁜 색시로 둔갑해 지나가는 사람을 꼬드긴다. 열 네 살 순진한 달섭이 누나는 만오천년 된 늙은 떡갈나무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가 꼼짝없이 그 나무에게 시집가야 했다.

하일지(59) 장편소설 ‘누나’(민음사)는 열 두 살 어린 화자를 내세워 인간의 설화적 원형을 찾아가는 소설이다. 소설의 어린 화자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아무리 황당해도 독자 입장에서는 무엇이 ‘사실’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읽는 이들은 누구나 쉽게 기댈 수 있는 ‘상식’이라는 잣대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식이라는 것도 또하나의 편견일 가능성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누나’의 화자인 열 두 살 사내 아이는 산골 마을에서 공부를 제일 잘 하는 촉망받는 존재이자, 오줌싸개이면서 ‘피가영’이라는 정갈한 뒤란을 가진 집의 여자 아이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년 화자에게 생생한 진술과 대사를 부여한다. 섹스, 바기너 혹은 페니스라는 외래어는 덜 쑥스러워도 쌍시옷 발음의 외자로 발음되는 ‘교미’에 해당한 그 단어와 ‘지’로 끝나는 남녀의 성기를 지칭하는 우리말은 정작 민망하고 불편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 동참하면 어쩔 수 없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달섭이 누나가 떡갈나무 앞에서 부른 노래.

“남가남가 떡갈남가,/ 코가 큰 떡갈남가,/ 네 *지 보여주면/ 내 *지 보여 주지.”

책에서야 무삭제지만 신문이니 만큼,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편견’인 만큼 제대로 보여주기 어렵다. 이 소설은 하일지가 일찍이 1990년 ‘경마장 가는길’로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파문을 떠올리면 오히려 얌전하고 서정적인 편이다. 프랑스 리모주 대학에서 누보로망 작가인 알랭 로브그리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작가의 작품답게 감정이 전혀 깃들지 않은 정밀하고 낯선 묘사로 가득한 ‘경마장…’은 극심한 찬반 양론의 대상이었다.

설화적 상상력으로 새 소설을 펴낸 하일지. 그는 “보편적 자연 상태에서 자유롭게 얻었을 소중한 것들을 우리는 지금 철저하게 잃어버린 건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동안 하일지는 서사에 주관적 감정을 깊이 투사하지 않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서술자의 태도를 취했다. 근년 들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되 그 서술이 반드시 진실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는 화법을 구사하는 추세다. 우리 소설의 화자는 대부분 도덕적이거나 정서적으로 완전한 인격자의 포즈를 취하면서 작가와 동일시되는 편인데, 하일지는 그 화자가 아무리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더라도 그 속에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겠다 했다.

이번 소설은 아이를 화자로 내세우면서 그 또래의 보편적 상상의 세계를 한껏 열어젖힌다. 그 바탕에 원초적이랄 수밖에 없는 성애(性愛) 혹은 사랑의 본질과 애환을 아련하고 솔직하게 그려낸다. 나무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몽환적 상상력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하일지는 쉼없이 새로운 변신을 추구했는데 아이들의 보편적 상상력은 그가 20여년 전부터 미국과 프랑스에서 펴낸 시집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냈던 세계라고 한다.

‘누나’에서는 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편안하고 따스한 원형적 상상력에 취할 수 있다. 소설 속 아이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정갈한 뒤란을 가진 집의 여자 아이와의 사랑은 애잔하고 서글프다. 죽은 계모가 그를 위해 시주한 절집의 작은 종(鐘)은 ‘편견’의 마침표다. 그가 훗날 외교관이 되어 파리에 처음 부임했을 때의 주소 ‘프랑스 파리 생 마르탱 37’을 계모는 그 종에 이렇게 새겼다.

-佛蘭西國 巴里市 生馬路洞 三十七番地(불란서국 파리시 생마로동 삼십칠번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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