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한 ‘폴리스’는 당시 유행했던 모든 종류의 쇼를 결합시킨 스케일이 큰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워낙 인기가 있어서 출연했던 배우들도 일약 스타로 떠오르곤 했는데, 그런 만큼 캐스팅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었다.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폴리스’는 바로 그 화려한 쇼에 출연했던 남녀 배우들의 뒷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극에서 인물들은 자신들이 젊음을 바쳤던 공연장이 헐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모여들어 재회하게 된다. 이때 중년의 위기를 맞이한 두 쌍의 남녀 커플이 과거의 사랑에 대한 미련의 불씨를 다시금 불태우며 숨바꼭질을 하듯 바람을 피우며 극을 흥미롭게 이끈다.
이때 주목할 것은 시도 때도 없이 과거 젊은 무희시절의 모습이 유령처럼 무대를 가로질러 다니는 연출이다. 아울러 끊임없는 플래시백으로 장밋빛 과거의 장면과 흑백의 현재가 교차되는 모습도 흥미롭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의 회한을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다. 음악 역시 보더빌 시대와 현재의 스타일이 대조되며 정서를 북돋운다. 이렇듯 인물들에게 ‘폴리스’ 시절은 인물들에게 아름다웠던 과거를 일깨우는데, 뿐만 아니라 순수했던 쇼비즈니스 무대를 상기시켜준다.
뮤지컬 ‘폴리스’는 과거 화려한 쇼의 무희였던 남녀 배우들이 중년이 되어 재회하는 모습을 담았다. |
한편, 이 뮤지컬은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되었는데, 바로 여배우 글로리아 스완슨이 무너진 극장의 폐허 위에 아름다운 포즈로 서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녀의 우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극장의 폐허를 고대 그리스의 유적과 같이 아우라 흥건한 곳으로 바꿔 놓은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글로리아 스완슨처럼 ‘폴리스’의 인물들도 배우로서의 반짝이는 모습과 자부심을 잃지 않는다. 과거 젊은 시절의 모습과 함께 안무를 소화해내는 장면은 감정이입하여 경의를 표하고 싶게 만든다. 비록 박자와 스텝을 좀 틀릴지라도.
뮤지컬은 현대적인 매체인 만큼 영상이나 기록으로 장르의 발전사를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다. 이때 화면 너머로 느껴지는 배우들 혹은 창작자들의 열정은 보는 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필만큼 감동적이다. 물론, 공연은 복제될 수 없는 순간의 예술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바람처럼 흩어진다. 그렇지만 그 무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을 통해 몇 배의 응축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즉 무대는 1회적이지만, 그 순간은 쇼비즈니스의 세월을 공유한 사람들 속에 영원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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