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여행문화가 그렇듯이, 크루즈 역시 유럽과 미국에서 발달했고 세계 굴지의 크루즈 선사는 대부분 지중해와 카리브해를 거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십여년 전만 해도 한국 사람이 크루즈 여행을 경험하려면 멀리 이탈리아 베네치아나 미국 마이애미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했다. 최근 몇 년 새 아시아 시장이 주목받으며 미국, 유럽의 선사가 태평양과 인도양에 대형 크루즈선을 투입하는가 하면 아시아 자본도 크루즈선을 띄우기 시작했다. 홍콩 기업이 출자한 스타크루즈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크루즈 선사로, 그간 싱가포르를 모항으로 삼아 크루즈를 운영했다. 그러다 4월부터 홍콩에서 출발해 남중국해를 도는 크루즈 상품을 새로 선보여, 한국 사람들도 크루즈 여행을 경험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남중국해는 중국 남쪽에 베트남·필리핀·보르네오 섬 등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일컫는다. 남지나해로도 불리는 이 바다가 지중해나 카리브해 같은 낭만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이 바다에서 불멸의 사랑이나 위대한 서사를 담은 영화나 소설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 탓이다.
소호 거리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
스타크루즈의 슈퍼스타 버고(Virgo)호를 타고 남중국해를 돌아봤다. 상품에 따라 세부 일정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은 출항 하루 전 낮에 홍콩에 도착한다. 버고호는 둘째 날 오후에 출발한다. 첫째 날 오후와 둘째 날 오전에 시간 여유가 있어 홍콩을 대표하는 명소 몇 곳을 둘러보게 된다.
‘소호(SOHO)’는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과 이태원을 섞어놓은 거리로, 오르막 계단과 멋진 골목들이 이어지며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이곳에는 낡은 건물 사이로 세련된 레스토랑과 갤러리, 아기자기한 노천 카페들이 즐비하다. 소호의 대표 명물은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했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다. 길이 800m에 달하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긴 에스컬레이터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교통체증이 심한 홍콩 고지대 사람들의 출퇴근용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소호의 필수 관광코스가 됐다.
3박4일간의 남중국해 여행을 마치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온 스타크루즈사의 슈퍼스타 버고호가 빅토리아 항구에 닻을 내렸다. 잠시 후에는 홍콩섬의 마천루가 화려한 빛을 발사하는 ‘심포니 오브 나이트’라는 레이저쇼가 시작된다. |
레이디스 마켓도 홍콩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을 지니고 있다. 답답한 느낌을 줄 정도로 촘촘히 들어선 고층빌딩과 그 아래 2, 3층 높이로 빼곡히 세운 옷 진열대가 홍콩의 비좁은 거주공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 정도 거리에 100개가 넘는 노점들이 모여 있는데,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을 상대로 옷과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곳이 많아 레이디스 마켓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3박4일간의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5일째 저녁 다시 빅토리아 항구의 오션터미널로 돌아오면 잠시 후 세계 최고라는 홍콩의 화려한 야경을 만날 수 있다. 야경 자체도 대단한 볼거리인데, 매일 밤 빅토리아 항구 양쪽에 자리한 40여개의 마천루가 화려한 빛을 발사하는 ‘심포니 오브 나이트’라는 레이저쇼가 곁들여진다. 이렇게 강렬한 피날레가 있어 이 여행은 한층 더 오랜 여운을 남긴다.
홍콩·하롱베이=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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