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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떠나자] 능선따라 걷는재미 쏠쏠…삼도봉서 오른 백두대간 대종주

입력 : 2014-07-26 18:23:25 수정 : 2014-07-29 16:5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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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지사. 주말에는 떠나보기로 결심은 했는데 마땅한 장소도, 의미도 없다. 어디론가 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는 쉽사리 정하기 어려운게 길이다. 그러던 차에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백두대간’을 함께 가지 않겠냐는 제안이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백두산부터 시작하는 산줄기려니 짐작한다. 그런데 그중에 어디를 가자는 말인가?

언제, 어떻게, 어디로... 꼼꼼하게 챙겨 떠나려는 준비는 한방에 해결됐다. 아웃도어 브랜드 ‘라푸마’가 ‘백두대간 대종주 시즌 2’를 한단다. 그렇다면 이미 시즌 1을 했단 얘긴가. 이 땅에 수십 년간 살아오면서 또, 여행을 업으로 삼는 기자생활도 몇 해 겉핥기로 했지만 백두대간을 주제로 길을 떠나긴 처음이다. 그런데 라푸마는 프랑스 브랜드 아니던가?

산행의 시작은 계속 의문으로 끝났다. 프랑스 브랜드가 우리나라에서 백두대간을 종주하겠단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아웃도어 브랜드가 산으로 간다는데 이상할건 없다. 이들은 왜 우리 민족의 혈맥인 백두대간을 걸을까. 이미 10년 전에 시작했고 이번이 두 번째라니 수십 년 살아온 이 땅의 인간으로 반성이 앞선다.

산행 당일 느지막이 모였다. 이른 새벽부터 올라갔던 지금까지의 등산과 다르다. 서울 강남의 라푸마 본사에서 집합한 인원은 어림잡아 70여 명. 대형버스 2대가 경남 거창을 향해 달렸다.

버스에는 남녀노소, 정말 다양하게 모였다. 이번 백두대간 산행이 2시즌의 다섯 번째라고 한다. 매달 한 번씩 계속되는 백두대간 종주는 무려 2년간 계속한다. 2년을 꼬박 돌고나면 한반도 백두대간을 완주한다. 비록 북쪽의 땅은 밟지 못하지만...

늦은 아침 달리기 시작한 버스는 왁자지껄하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은 한껏 들떴다. 중년의 부부도 있고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도 있다. 서로 공통점을 찾기 힘든 이들은 <산으로 떠나는 휴가>라는 주제로 모였다. 라푸마에서 선정한 7월의 주제다. 지난 6월에는 <보훈의 달>로 정해서 해병대를 비롯한 전우의 모임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매달 새로운 사람들이 백두대간을 걷는다.

4시간을 달린 버스는 경상남도 거창의 소사고개 중턱에 일행을 내려놨다. 이미 산을 연거푸 버스로 오르고내려 이곳이 산인지, 언덕인지, 능선인지 모를 곳이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는 소사고개에서 시작해 삼도봉, 대덕산, 덕산재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는 거꾸로 오는 코스지만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걷는다는 취지로 능선을 오른다. 이런 것이 단체 산행의 묘미일까. 차에서 내려 배낭 들쳐 메기 무섭게 입산을 시작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차근차근 준비운동부터 해충 퇴치를 위한 약도 바르고 서로의 등짐을 살펴준다. 5개 조로 나눠 “떨어지지 말자”는 굳은 결의도 새긴다. 7월 중순의 뜨거운 날씨지만 나뭇잎이 무성한 산길은 열기보다 푸릇한 풀냄새가 강하다.

고랭지 배추밭을 지나 본격적인 능선타기를 시작한다. 한 마을 주민은 반바지를 입은 기자에게 “진바지 입어, 풀에 다 쓸려”라며 걱정해주신다. 능선 길은 어렵지 않다. 언제나 산행은 30분이 고비다. 땀이 쪽 빠지고 ‘힘들어’를 열 번 쯤 외치면 아드레날린이 솟아나며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소주 다섯 잔 이후엔 내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나를 마시는 원리와 같다. 산을 자동으로 올라간다.

소사고개에서 1시간가량 올라가니 삼도봉이 나온다. 이름으로 짐작하듯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가 한 곳에서 만난다. 다시 말하면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가 만난점이다. 삼도가 만난 지는 무척이나 오래된 듯 고지도에도 삼도봉은 등장한다. 거창군에서 마련한 해발 1249m의 초점산 정상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1m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삼도봉 표지석은 1248m라며 아주 작게 있다.

단체 산행의 묘미가 또 시작됐다. 점심식사 역시 주최 측에서 준비했는데 줄을 잡아당기면 10분 만에 뜨거운 밥이 완성되는 이른바 ‘발열 도시락’이다. 손을 델 수 없을 정도로 뜨끈한 김이 나더니 금세 맛있는 점심이 됐다. 야채밥, 제육덮밥 종류도 다양하다. 애초 벌레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얼굴이며 목까지 꽁꽁 싸맸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숲에는 잠자리가 제철을 만난 듯 날아다녔다. 일행의 산길에도 모자에 앉고 배낭에 앉으며 동행했다. 모기를 비롯한 해충을 잡아먹으니 마치 ‘해충퇴치 호위군’을 모시고 다니는 셈이다.

간단한 식사를 마치자 본격적인 능선타기가 시작된다. 삼도봉에서 잠시 내려오는 듯해서 경치를 감상하려니 눈앞에 다른 봉우리가 나온다. 앞서간 일행은 푸른 숲에 울긋불긋 점으로 보인다. 얼마 전 올랐던 강원도 월악산에 비하자면 양반 중에 양반이다. 계단과 발만보고 헉헉대는 숨소리만 듣고 오르던 때와 완전히 다르다. 능선 따라 가는 길옆엔 선주홍의 야생 나리꽃이 피었다. 꽃을 보는데 호랑나비가 시샘하듯 날아든다. 꽃만큼이나 화려한 등산복의 일행들은 마치 일개미처럼 능선을 따라 이어졌다. 70여 명이 산을 오르니 우리 말고 다른 일행이 없어도 적적하지 않다. 아까 전 ‘진바지 입어’라던 동네 어른의 말씀처럼 반바지를 입은 다리는 수풀에 쓸리기 시작했다. 백두대간 능선은 그다지 인기 있는 등산로가 아닌 탓에 진정한 산행의 맛을 본다. 앞사람이 밟은 흔적을 따라 겨우겨우 앞으로 가는 기분은 서울 근교 어지간한 산에서는 느낄 수 없다.

1시간 30분 정도를 더 걸어가니 이번 산행의 최고봉인 해발 1290m 대덕산 정상에 도달했다. 점심 이후로 걸어온 길이 고도 상으론 50m다. 능선을 걸었다는 증거다. 대덕산 표지석은 김천시에서 마련했다. 어른 허리춤 정도의 키에 소박한 모습이다.

정상에 오르기 전 단체사진도 찍었다. 70여 명의 인원이 모두 나오는 사진은 정상 직전 능선에서만 가능했다. 백두대간 혈맥인 능선이 배경이고 화려한 색상의 등산복을 입은 일행은 오롯이 이 길의 주인이다.

5개의 조로 나눠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을 오르던 일행은 산행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선두와 후미로 나뉘었다. 7살 아이는 아버지가 부러진 나뭇가지로 마련해준 등산스틱이 무척 마음에 드는 듯 잰 걸음으로 하산했다. 덕산재로 향하는 하산길은 돌로 만든 천연 계단으로 이어져 빨리 내려가긴 무리다. 하지만 차근차근 한발씩 내려가면 고도가 쑥쑥 내려간다. 며칠 전 비가 왔던 탓인지 진흙이 된 길도 있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내려오는 길에는 ‘어름폭포’라고 쓴 계곡이 있어 손과 발을 담그고 잠시 땀을 식혔다. 백두대간의 물은 차가웠다. 머리를 담갔던 일행은 깜짝 놀란다. 후덥지근한 여름 산행에 묘미를 하나 더 만났다.

라푸마는 10년 만에 다시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를 “한국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 진출 당시에 시즌 1을 시작했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처럼 바뀐 산을 다시 배우겠다는 뜻이란다.

8월에는 방학을 맞은 청소년을 위한 ‘틴에이저 클럽’ 특집을 한다. 우두령, 삼성산, 바람재, 황악산, 괘방령으로 이어지는 6구간 종주는 청소년과 함께한다. 안전을 위해 전문 산악인이 동행하니 우리 산을 배우겠다는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의 행사에 아이들을 맡겨봐도 좋겠다.

산행의 마지막은 든든한 삼겹살이 함께했다. 조용한 마을의 작은 식당은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한나절 산행을 같이 한 일행은 산을 주제로 왁자지껄 대화에 빠졌다.

주말이면 산으로 떠나보겠다는 연초의 결심이 결국 백두대간 도전까지 이어졌다. 요령도 생겼고 이런저런 등산 장비도 갖췄다. 올라가는 길에는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내가 산에 왜 왔을까’라는 후회를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후회는 기억나지 않는다. 산의 매력을 알았다. 다음 산행은 어디로 갈까. 이런 것이 중독이려나.

이다일 기자 aut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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