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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가 산 속을 지나다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보았는데 나무를 베는 사람이 그 옆에서 나무를 베지 않고 서 있었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가지가 너무 많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했다. 장자가 말했다. “이 나무는 재목감이 아니어서 천수를 누리는구나.” 곧고 잘생긴 나무는 쓸 곳이 많아 곧바로 잘린다. 굽고 가지가 많아 쓸모없는 나무는 숲을 지키며 그늘도 만들면서 뭇 생명의 안식처가 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못난 자식이 부모 섬긴다’는 말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김영범 한림대 교수의 ‘부모 부양 책임감의 세대 간 차이’ 보고서에 따르면 학력이 높고 돈 잘 버는 자식보다 학력이 낮고 소득이 적은 자식이 부모 부양 책임을 더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배우자와 사는 사람보다 배우자 없이 사는 사람이, 여자보다 남자가 부모 부양을 더 생각했다고 한다. ‘잘난 자식’보다 ‘못난 자식’이 집을 지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교육을 통한 탈전통적 규범과 가치 습득”을 원인으로 꼽았다. 잘못된 교육이 싸가지 없는 자식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

지난 주말 한참 못 본 친구에게 “저녁이나 먹자”고 했더니 “어머니가 사주시는 저녁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기초연금을 두 배 넘게 받은 기념으로 당신이 자식들에게 한 턱 쏘시겠다고 했단다. 그 친구는 어찌어찌 해서 형편이 여의치 않아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있다. 부모 눈에 ‘잘난 자식’ ‘못난 자식’ 구분이 있을까마는 옆에서 보기에 출세해서 일 년에 한두 번 얼굴 들이미는 ‘잘난 자식’이 아닌 것이 다행이다. “모처럼 사주시는 밥이니 맛있게 잘 먹으라”고 했더니 “밥이 목으로 넘어갈까 모르겠다”고 전화기 저쪽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만 65세 이상 노인 410만명이 지난 주말 첫 기초연금을 받았다. 기초노령연금을 받다가 재산 좀 있다는 이유로 연금을 받지 못하게 된 노인 2만3000명은 화가 났겠지만 연금 대상자의 93%는 20만원 전액을 받는다. 큰 돈은 아니지만 매달 통장에 연금이 입금되는 그날 하루만이라도 형편 어려운 자식에게 마음껏 집어주고 손자에게 용돈도 덥석 쥐어주고 싶은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부모님 연금이 늘었다고 그마저 뜯어가는 ‘나쁜 자식’은 없으려나.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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