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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정부가 우습게 보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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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28 22:48:56 수정 : 2014-07-28 22: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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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눈물과 각오 헛되지 않게 하려면
이목지신 교훈 새겨 국민신뢰 얻어야
세상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손바닥 안에 있는 것 같다. 유씨는 살아서 온 국민을 충격 속에 빠뜨리더니 죽어서도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순천경찰서장, 전남지방경찰청장, 인천지검장을 차례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법무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도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세계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한다는 수사기관들이 40일 전에 죽은 사람을 잡겠다고 전국을 이 잡듯 뒤지느라 헛심만 썼다. “시골 형사가 검경 망신을 시켰다”는 탄식이 나오고 “귀신에 홀린 것 같다”는 자조가 검경에서 흘러 나온다. 초동수사 실패, 부실 수사의 책임을 말단 경찰과 귀신에게 떠넘기고 싶은 생각의 끝자락이겠으나 우리가 본 건 세월호 참극에서 봤던 바로 그 ‘정부의 무능’이다.

검찰과 경찰은 유병언 수사 처음부터 협력을 하지 않았다. 공조는커녕 공(功)을 다투며 경쟁하기까지 했다. 국가기관이 하는 일에 공사(公私)가 구분되지 못한 것도 모자라 사(邪)까지 끼었다. 뒤늦게 경찰 총수의 입에서 “향후 공적에 눈이 멀어 기관 간 협조가 안 될 때는 책임을 엄하게 묻겠다”는 엄포가 나왔다. 본질은 수사권을 놓고 갈등하는 검경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콘크리트 벽인데도 여기에 대해서는 눈을 질끈 감고 있다.

국민 눈에 정부가 우습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해도 그보다는 낫겠다”는, 술자리에서나 거침없이 오갈 호기와 호언장담이 저잣거리에 가득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을 축제에서 고무풍선 날리듯 해서야 무슨 믿음을 줄 것인가. 불신만 쌓일 뿐이다. 국방력과 경제력을 아무리 키운다 한들 국민 신뢰가 없는 사회의 울타리는 속 빈 강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 이목지신(移木之信)의 교훈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진나라 재상 상앙은 나라에 대한 불신을 없애기 위해 대궐 남문 저잣거리에 나무를 세웠다.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오십금을 주었고, 백성의 믿음을 얻은 뒤 법치주의 기틀을 마련했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이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나무를 세워 청와대로 옮기는 사람에게 유병언에게 내걸었던 현상금 5억원을 주면 어찌될까.

김기홍 수석 논설위원
정부가 “국민과 함께 힘을 모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어 가겠다”고 해놓고 혼자 저만치 앞서가며 “나를 따르라” 하고 있다. 국가혁신을 앞장서 이끌고 가기에는 도저히 ‘요령부득’이고 ‘감당 불가’로 보이는 인물들을 앉히더니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또 빼어든 게 부패 척결이다. 범정부 차원의 국무총리 소속 ‘부패척결추진단’을 만들어 ‘부패의 뿌리가 뽑힐 때까지 불퇴전의 각오’를 외치고 있으나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옥상옥이기 십상이다. 과거 정치깡패 소탕·사회정화운동·범죄와의 전쟁 시리즈의 후속편을 보는 것 같다.

세월호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지 100일이 넘었건만 대한민국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월호 후속대책을 놓고도 보수·진보, 여야가 멱살잡이를 하고 있다. 304명의 생목숨을 두눈 뜨고 수장한 죄책감에 치를 떨며 쏟아낸 눈물과 각오마저 헛되이 될까 걱정이다. 나라를 팔아먹는 망국의 대역죄를 저지르고도 정신을 못 차릴 것 같다.

전쟁의 폐허 위에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건설하는 데 60년이 걸렸다. 급하게 세우느라 미처 손보지 못해 생긴 튀어나온 곳을 다듬고 굽은 곳을 바로 펴는 일에 들여야 할 공력은 나라를 새로 짓는 일에 못지않다. 조그만 집을 짓는 일도 집주인과 인부들의 마음이 하나가 돼 힘을 합쳐야 제대로 마무리된다. 하물며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에 정부·정치권·국민이 따로 가면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어려울 때 좋은 아내가 생각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충신을 분별할 수 있으며, 세찬 바람이 불면 어떤 풀이 곧은 풀인지 알 수 있다 했다. 그런 혜안과 안목, 의지가 아쉽고 또 아쉽다.

김기홍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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