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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오르는 길은 급하지 않다. 사람을 재촉하지도 않는다. 드디어 자작나무 숲이다. 눈부신 흰 살의 향연이 펼쳐진다. 영화에서 본 시베리아의 드넓은 설원이 이 같을까. 하늘의 희뿌연 빛이 촘촘한 자작나무 사이로 새어 들고 있다. 나무껍질은 매끈하고 뿌리는 자줏빛을 띤다. 잎은 쉼 없이 산들거린다. 숲은 조용하고 경건하다. 오솔길은 숲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로 가까이 있다. 누구라도 뒤꿈치를 들고 천천히 걸어야 하리. 소나기가 반짝이는 잎에 쏟아지면 숲은 돌변한다. 이게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아니면 대체 뭔가.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그저께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다녀왔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말했다. “여행에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생각이다.” 여행을 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다. 그것을 소유하는 방법은 뭔가. 사진기로 찍는 것은 초보적이다. 관찰의 힘은 여행의 즐거움을 두 배 세 배로 키워 준다. 방법은 간단하다. 무언가를 보고 마음속에 그려보고 새겨두는 것이다. 스케치하듯. 뒷산을 오르며 꽃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여행이다. 침실에서 찬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여행 다큐멘터리를 봐도 멋진 여정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달 1일까지 휴가여행을 떠났다. 지난해와 다르다. 그때는 아버지 박정희와 같이 가곤 했던 저도에 다녀왔다. 이번엔 북악산 밑 청와대 관저에서 조용히 보낼 계획인 듯하다. 생각할 게 많아 그럴 게다. 어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이어지는 말없음표엔 근심이 가득하다. “힘들고 길었던 시간들… 휴가를 떠나기에는 마음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시간 동안 남아 있는 많은 일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더운 여름, 모든 분들이 건강하길 바라면서….”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대통령이 방에 콕 박혀 ‘방콕 휴가’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메시지가 뭔지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아쉽다. 걱정은 국민에게 전염되기 십상이다. 몸을 던져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 있지만 국민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활력이다. 그래서 여름 휴가 중 하루라도 시간을 내 자작나무 숲 같은 데를 여행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귀갓길에 제철인 복숭아 밭에 들러 농부의 땀을 닦아주는 것은 또 어떤지.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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