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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사회에 분노, 귀신을 낳다

입력 : 2014-07-30 19:50:29 수정 : 2014-07-30 19: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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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요괴·이물의 비교문화론’을 통해 본 한·중·일 괴담사

귀신이 가장 많이 호출되는 계절이다. 이불 덮어쓴 채 오두방정을 떨면서도 끝내 ‘전설의 고향’을 보고야 말았던 때, 공포영화가 영화관을 점령하는 때, 모두 여름이다. 귀신 이야기는 피서의 한 방법이지만, 무서움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통과 합리성으로 구축된 질서의 영역에서 완벽하게 벗어난 존재인 귀신은 사회를 비판하고, 전복하려는 염원의 한 표상이었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전근대 시기 괴담을 분석한 ‘귀신·요괴·이물의 비교문화론’(신이와 이단의 문화사팀 지음, 소명출판)이 전하는 의미다.

◆귀신, 부조리한 현실이 빚은 존재

가장 ‘익숙한(?)’ 귀신은 역시 처녀귀신으로 대표되는 여귀 혹은 원귀(寃鬼)다. 파괴적인 힘으로 분노를 표출하거나 억울함을 풀어주길 원하는 존재들이다. 배신한 남자를 기다리다 상사병으로 죽은 뒤 뱀으로 되돌아온 여승의 원혼, 계모에게 죽임을 당한 장화·홍련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국가나 사회, 가족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결함이나 무능으로 인해 희생당한 자들이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그 부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질서, 신분의 차별, 정치적 갈등의 희생자들이며, 전쟁이나 전염병 등으로 목숨을 잃은 자들도 있다. 일본에서 역시 “부부, 교우 관계, 주종 관계와 같은 사회관계의 뒤틀림이 괴담의 씨앗이 되었고, 괴담사의 주류를 이뤘다”고 한다. 책은 귀신들이 표현하는 원한은 “(당대의 사람들이) 사회적 갈등과 재난의 소재라고 생각한 지점이 어디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한이 종종 수령을 통해 해소된다는 점에서 괴담의 체제 전복적 성격이 희미해지기도 한다. 조선 후기의 괴담 속 귀신이 “가부장적 국가, 가족 질서에서 ‘상징적 아버지’의 역할을 대행하는 관장(官長)에게 신원을 호소한다는 것은 다시 남성 지배체제에 포획되는 것”일 수 있다.

체제 수호자를 자처하는 조상 귀신들도 있다. ‘혼령이 되어 돌아온 윤안국’ 이야기에서 윤안국의 혼령은 스스로 사당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평소처럼 말하고 아들을 가르친다. 현세의 가족질서가 사후 세계에까지 침투한 것인데 “삶과 죽음이 큰 단절 없이 연속되어 있는 상상적 세계상은 죽음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남자 홀리는 여우, 선의 상징으로도 활용

괴담하면 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이 여우다. 한·중·일 세 나라 모두에서 즐겨 등장하던 소재다. 변신술로 인간의 삶을 교란하고, 밤마다 민가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를 일삼는 여우는 악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여우가 50년을 묵으면 여인으로 변하고, 100년이면 미녀가 되어 남자와 관계를 맺어 이성을 잃게 하고, 1000년이 지나면 하늘과 통하는 ‘천호’(天狐)가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중국 문헌 ‘현중기’ 등에 드러나는 인식이다.

하지만 ‘수신기’라는 책에서 여우에 대한 묘사는 딴판이다. “한 서생이 있었는데 머리가 희어 호박사라 불렀다.…(글을 강의하는 소리가 나는) 무덤 속을 보니 뭇 여우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을 보자 곧 달아났다. 늙은 여우만 혼자서 달아나지 않았으니 곧 머리 흰 서생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여우는 박식함의 대명사다. 한국에는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서경덕이 여우와 육경, 천문지리 등을 논쟁했다는 설화도 전한다. 여우가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 것인데, 그래서인지 위인들의 출생을 여우와 관련 짓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 일본 헤이안 시대 최고의 음양가(천문, 풍수지리 등을 따져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사람)인 아베노 세이메이가 여우의 아들이라는 설화가 있다.

‘보은과 희생 정신의 원형’으로 활용되는 여우는 악이 아니라 선의 상징이다. 여기서 여우는 인(仁), 보시(布施), 자비 등 동아시아 문화의 정서를 표현한다. 특히 일본의 설화에는 여우의 보은담이 많이 있다. 여우의 보은으로 의술을 전수받아 명의가 되고 그 여우를 위해 신사를 지어 모신 예가 있고, 420년이나 되는 ‘백랑좌위문’(白郞左衛門)이라는 여우를 모신 덕에 전쟁에 이긴 이야기 등이 전한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어느 무사와 하루 밤을 보내고는 그 정을 잊지 못해 무사 대신 목숨을 내어놓은 여우의 이야기는 ‘남자를 홀리는 여우’라는 일반적 인상과 배치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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