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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정계은퇴 선언 "저녁있는 삶 못지켜 송구"

관련이슈 2014년 7.30 재보선

입력 : 2014-07-31 20:05:43 수정 : 2014-08-01 02: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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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31일 국회 정론관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21년 정치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여의도를 떠나 평범한 시민 손학규로 돌아갔다. 손 고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치인은 선거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오랜 신념”이라며 사퇴 배경을 밝혔다. 이번 7·30 재보선에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뜻을 받아들이겠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이어 “국민에게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자세를 낮췄다.

손 고문의 은퇴 선언은 당 안팎에 적잖은 파장을 던지고 있다. 다른 당내 중진들 거취에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나오고 있어서다. 새정치연합은 이미 7·30 재보선 공천과정에서도 중진급 인물을 배제하고 새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손 고문의 결단을 계기로 재보선 참패에 따른 당 혁신 과정에서 중진들의 2선 후퇴, 세대교체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경기 수원병 보궐선거에서 낙선한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국회에서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원내대표실로 찾아가 박영선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아 비상대책위 구성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
남제현 기자
1993년 경기 광명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정치권에 들어온 손 고문은 자신의 과업을 완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그는 “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세상, 모두 함께 일하고 일한 만큼 모두가 소외받지 않고 나누는 세상, 그런 대한민국을 만들려 했던 제 꿈을 이제 접는다”며 “능력도 안 되면서 짊어지고 가려 했던 모든 짐들을 이제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손 고문은 재보선 패배 원인으로 “제가 부족해서 제대로 못해 패했고 새정치연합의 중진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통감하고 있다”며 “수원에서 참패한 것은 제 자신의 패배이기도 하지만 국민이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고 새정치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전격 은퇴 선언에 앞서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의원과 측근 10여명과 오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정계은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측근들은 만류했지만 손 고문의 뜻을 돌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기자회견장 주변에는 김동철, 조정식, 최원식 의원 등 친손(친손학규)계와 당직자 20여명이 함께했다. 일부 의원들은 손 고문의 회견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늘 순탄치 않은 삶을 선택해왔다. 고3 시절에는 대학생들과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했고, 고인이 된 법대 조영래 변호사, 상대 김근태 전 의원과 함께 서울대 운동권 삼총사로 불릴 정도로 반골 기질을 타고났다. 유신시절에는 독재에 항거한 이유로 체포돼 고문을 받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풀려나기도 했다.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로는 진보정치 이론가로, 1993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보궐선거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를 지내며 정치 경론을 쌓아 대선주자급으로 성장했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 대통합민주신당 대선경선에 합류했지만 당시 정동영 후보의 조직표를 넘어서지 못하고 좌절했다. 2011년 여당 텃밭인 분당을 보궐선거에 도전해 승리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지만, 다음해 대선경선에서 친노(친노무현)계 문재인 후보에게 패해 꿈을 이루지 못했다.

김달중 기자 da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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