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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호랑이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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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01 21:57:10 수정 : 2014-08-01 21: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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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꽃잎이 바다 위로 무수히 낙하한다. 무명옷을 입은 조선 병사들은 적의 총을 맞고 성곽 아래로 떨어졌다. 서구의 호랑이에 맞선 병사들의 손에는 변변한 무기조차 없었다. 머리 위로 총알이 빗발쳤지만 구식총에 화약을 밀어넣기 바빴다. 그들의 병기는 낡았고 적의 공격은 비호처럼 빨랐다. 병사들은 맨몸으로 침략자를 맞았다. 돌멩이를 던지고 흙가루를 집어 그들의 얼굴에 뿌렸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강화도 초지진의 처절한 전투 장면이다. 용감하게 싸운 병사들은 조선 팔도에서 소집된 호랑이 사냥꾼들이었다. 조국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이들은 강화에서 한 떨기 꽃이 되었다.

당시 참전했던 한 미군 소령은 장렬히 산화하는 조선군의 모습을 보고 이런 글을 남겼다. “그들은 낡은 총을 쏘다가 총알이 떨어지면 돌을 던졌고 돌이 떨어지면 소리를 질렀다. 조선군은 결사적으로 싸우면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진지를 사수하다 죽어갔다. 나는 가족과 국가를 위해 이보다 더 장렬하게 싸운 병사들을 다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동족상잔의 6·25전쟁에서도 많은 ‘호랑이 사냥꾼’들이 조국에 생명을 바쳤다. 전쟁 첫날, 국군은 춘천 부근에서 남진하는 ‘인민군 호랑이’를 만났다. 생전 처음 구경하는 탱크였다. 장병들이 대전차포로 공격했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장병들은 두려워하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화염병을 품에 안고 호랑이를 향해 돌진했다. 으르렁거리며 진격하던 탱크는 바퀴축에 불이 붙은 채 멈춰섰다.

국난의 시기에 ‘호랑이’에 맞선 사람은 비겁한 지도자가 아니라 한낱 이름 없는 병사였다. 강화도에서 조선군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 미 해군은 결국 뱃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6·25전쟁 당시 한강 참호를 지키던 한 국군 병사는 “자네 언제까지 그 호를 지킬 건가?”라는 맥아더 장군의 물음에 이렇게 소리쳤다. “저의 상관이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릴 때까지 이곳을 지키겠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간 안철수씨가 그제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야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진짜 패인은 아마 기호지세(騎虎之勢)에서 머뭇거린 비겁이 아닐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위험을 무릅쓰고 등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 아닌가. 어디 정치인 안씨만의 문제일까. 한반도 안팎은 맹수가 우글거리는 위험지대다. 국가지도자가 위험에 맞서지 않으면 국민이 위험해진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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