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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택의新온고지신] 습정투한(習靜偸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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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11 22:29:00 수정 : 2014-08-11 22: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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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휴가철이다. 입추·말복이 지났기에 바람 끝에 조금 서늘함이 묻어 있지만 더위는 여전하다. 그러다보니 태풍을 피해 해변가와 계곡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막차’ 피서객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피서에는 물가를 으뜸으로 친다. 그중 계곡 물에 발 담그기는 최고의 피서법이었다. 아니, 문명의 이기가 보편화된 지금도 계곡에 걸터앉아 발 담그는 시원함을 따라갈 피서법은 없다.

우리 선조들은 피서를 위해 탁족(濯足: 계곡물에 발 담그기), 거풍(擧風: 대청마루에서 시원한 바람 쐬기), 유두(流頭:맑은 시냇물에 머리감기) 등으로 조용히 여름을 보냈다. 웃어른들이 “계곡에 탁족하러 가세”라고 했을 때는 ‘계곡물에 발 담그러 가자’라는 의미가 된다. 점잖은 체면에 옷을 홀라당 벗고 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시라도 한 수 읊으면서 더위를 식혀보자는 뜻이다.

탁족이라는 용어는 ‘맹자’의 “창랑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 물이 흐리거든 내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이와 관련해 ‘탁족’은 그냥 발만 씻자는 단순한 의미 넘어 더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알게 한다. ‘물이 맑은 것처럼 좋은 세상에서는 조정에 나아가 벼슬을 하고, 물이 흐린 것처럼 탁한 세상이 되면 벼슬을 버리고 숨어 산다’는 뜻이다.

자신을 다스리는 ‘수신(修身)’이면서, 또한 세속을 벗어나 ‘청정함’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인 것이다. 이른바 고요함을 익히고 한가로움을 찾는다는 ‘습정투한(習靜偸閒)’을 피서의 근간으로 삼았다. 피서는 육신의 피로회복에 그치지 않고, 정신의 먼지를 씻어내길 원한 선비들이 때를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대망(大望)을 위한 휴지기! 늦여름, 당장이라도 휴대전화가 안 터지는 이름 모를 계곡으로 들어가 가슴을 풀어헤친 채, 깨끗하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싶다. 가을의 풍요로운 결실을 기약하는 귀한 사색의 시간이 될 터이다.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소장

習靜偸閒:‘고요함을 익히고 한가로움을 찾는다’는 뜻.

習 익힐 습, 靜 고요할 정, 偸 훔칠 투, 閒 한가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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