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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가 맺어준 수학과 미술의 유쾌한 데이트

입력 : 2014-08-12 22:26:20 수정 : 2014-08-12 22: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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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매트릭스展’ 수학이 미술관에 들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13∼21일 서울서 열리는 서울세계수학자대회를 기념해 마련하는 ‘매트릭스:수학-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전(내년 1월11일까지)은 수학과 미술의 유쾌한 데이트라 할 수 있다.

송희진 작가가 수학자의 노트에서 가져온 이미지. 도형을 통해 수학적 난제를 풀어 갔던 흔적이 꽃 그림을 연상시킨다.
전시 제목인 매트릭스(행렬)는 근대 이후 수와 계산(행렬과 연산)에 의해 통제받는 수학화된 세상을 상징한다. 예술가들도 수와 계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동시대 예술가들이 수학화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펴보는 것이 관람의 포인트다.

수학화된 세상은 반드시 부정적인 맥락에서 계산적인 세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참과 거짓, 진리를 추구하는 수학자의 열정은 순수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져 왔다. 수학자 괴델에 의해 완비성이 깨지고, 결정 불가능성이 수학을 넘어 과학, 법학, 디지털 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원용되고 있어도 근본은 ‘순수’라는 점에서 예술과 통한다. 예술은 우리사회에 존재해 왔지만 미처 가시화되지 않은 것들, 혹은 보려고 하지 않은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우리의 의식을 환기시킨다. 계산 불가능한 거나 결정 불가능한 지점, 하이데거가 말하는 심연의 영역으로 눈을 돌려 다른 종류의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의 힘이다. 수학과 예술이 심연을 향해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전시에는 베르나르 브네를 비롯해 자비에 베이앙, 랜덤웍스(민세희+김성훈), 국형걸, 송희진, 김경미, 유지원, 슬기와 민(최슬기+최성민) 등 국내외 작가 15명이 참여했다.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조각가이자 개념미술가인 베르나르 브네는 미술관에 대형벽화 작품을 선보인다. 수학 공식 등을 바탕으로 한 회화 작업을 꾸준히 해 온 작가는 벽면에 무질서하게 그려진 수학 공식을 통해 현대 사회의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송희진은 최재경 고등과학원 수학과 교수가 지난 30여년간 기록하고 보관해 온 수학연습노트 11권의 내용을 확대 복사해 ‘진리의 성’이라는 공간을 꾸몄다. 낙서와 같은 수학공식과 난제를 풀어가는 데 이용했던 도형들은 꽃 그림 같기도 하다. 랜덤웍스는 지난 100일간 서울시의 지출 데이터로 만든 지형도를 선보인다. 교육지원 경비, 인력 운영비, 청사 유지 관리 등 서울시의 일자별 지출 정보를 시각화해 현재 우리가 사는 도시가 어떤 이슈에 주목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작업이다. 

유지원 작가가 동양 수학의 하도와 낙서를 이용해 구성한 공간 설치작품. 일자형 복도 구조의 서구 건축과 달리, 다양한 방향으로 열려 있는 한옥 공간의 열린 구조가 동양 수학의 인식구조에서 왔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유지원은 동양 수학의 하도와 낙서를 이용한 공간 설치작품을 보여준다. 하도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일정한 수의 배열로 배치한 것을 말하며, 낙서는 중앙을 중심으로 8개의 방위에 특정한 수를 배치한 것을 일컬는다. 동아시아 전통수학의 인식 틀이다. 서구 수학의 인식 틀에 기반한 도로명 주소가 왜 우리에게 거북스러운지 깨닫게 해준다.

디자인듀오 ‘슬기와 민’은 아예 골치 아팠던 수학의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1996년 11월13일 시행된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역대 최악의 난도를 자랑하는 이른바 ‘불(火) 수능’이었다. 그중 수리영역 29번 문제는 정답률이 0.1% 미만이었을 정도로 지금까지도 악명이 높다. 수능은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수학적 삶’의 절정이자 끝을 장식하는 무대가 된다.

슬기와 민은 97학년도 수능시험의 수리영역 30문항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정상적으로는 풀 수 없었던 수학 문제를 시각화해 서로 다른 크기와 색깔의 패널 30개에 펼쳐 놨다. 가장 어려웠던 29번은 진한 파란색 패널에,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는 빨간색 패널에 풀어놓는 식이다. 문제를 접했을 때의 체감도를 색온도에 대입했다. 문제의 풀이법은커녕 원래 어떤 문제였는지도 알 수 없는 선과 기하학적 도형들만 보일 뿐이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접했을 때의 난감함 그 자체다.

전시 기간 수학자의 삶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예카테리나 에레멘코의 영화 ‘컬러 오브 매쓰’(Color of Math)가 상영된다. 러시아계 독일인 수학자이자 영화 감독인 작가는 영화에서 “수학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일 뿐”이라며 “수학은 충분히 관능적이며 맛볼 수 있고, 냄새를 표현할 수도 있는 매력적인 학문”이라고 말한다. (02)3701-9500.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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