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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미국의 郵票 소동, 한국의 圖鑑 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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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14 21:53:21 수정 : 2014-08-14 21: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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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엔 ‘포토샵’으로 일본해 표기 감추고
4월엔 ‘그런 표기 없다’박박 우긴 보훈처
광복절 반길 낯이 있나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언젠가 하버드대 동료 교수이자 아동심리학자인 셰프 화이트에게 왜 어린이들이 공룡에 관심이 많은지 물었다고 한다. 미국 사회에 공룡 열풍이 거세게 불던 1980년대 얘기다. 화이트의 대답은 간결했다. “크고, 사납고, 멸종했으니까.”

이승현 논설위원
이 크고, 사납고, 멸종한 동물을 놓고 미국 시민들이 갑론을박 소동을 빚은 적이 있다. 보다 정확하게는 동물이 아니라 그 이름을 놓고서. 소동은 대단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사설을 게재해 자못 진중하게 개입할 정도였다. 89년 10월11일자 신문에 게재된 ‘공룡 사설’은 학계에서 시작해 일반 사회로 번진 소동을 이렇게 약술했다.

“(미국) 우정공사는 새로 발행한 25센트짜리 공룡 우표에 잘못된 명칭을 붙여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 우표에 들어 있는 한 쌍의 공룡 그림에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설명을 붙여놓은 것이다. 성난 결벽주의자들은 정확한 명칭이 ‘아파토사우루스’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우표가 과학 문맹을 양성한다고 비난하면서, 전량 회수를 요구하고 나섰다.”

우표 소동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그제 활자화된 국가보훈처 뉴스를 읽다 기분을 잡친 것과 무관치 않다.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의 분석 결과를 전한 보도에 따르면 보훈처는 ‘동해(East Sea)’를 일본해(Sea of Japan)로 잘못 표기한 해외 6·25전쟁 참전기념 시설물이 많은 것을 알고서도 이를 은폐하려 했다. 2010년 제작·배포한 ‘6·25전쟁 60주년 기념 UN 참전기념시설물 도감’이 화근이자 물증이다. 보훈처가 제작에 앞서 사진자료를 모아 보니 한반도 지도가 들어 있는 해외 기념물 71개 가운데 12개 표기가 ‘일본해’였다고 한다. ‘동해’ 표기는 4개에 불과했고. 정부 예산 10억여원을 받아 건립된 8개 기념물조차 대체로 엉터리였다. 그중 ‘동해’ 표기는 단 하나였다.

보훈처가 이를 숨긴 것은 아니다. 외교부에 알렸다. 달랑 한 장짜리 보고서였다지만. 그런 후엔 그대로 나가면 말썽이 났을 사진의 ‘일본해’ 표기를 지워 도감에 실었다. 그제 뉴스는 “쉽게 말해 ‘포토샵’ 처리를 한 것”이라고 전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공룡 이름을 놓고서도 그 난리가 나는 미국, 동해 명칭 오류와 같은 국가적 쟁점 사안에 ‘포토샵’ 꼼수를 쓰는 대한민국. 대체 어느 쪽이 정상인가.

89년 10월 초에 티라노사우루스, 스테고사우루스, 프테라노돈, 브론토사우루스 이름을 달아 4종의 공룡 시리즈를 냈던 미국 우정공사는 당시 소동에 어찌 대처했을까. 잔꾀 없이 당당히 맞섰다. 시기적으로 먼저 공표된 명칭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국제동물학회의 ‘우선성’ 원칙에는 반한다 해도, 예외를 인정하는 다른 원칙에 부합하는 만큼 브론토사우루스는 얼마든지 정당화가 가능하다는 점에 힘입은 정면 대처였다. 우정공사는 공식 입장을 설득력 있게 밝히면서 비난 물결을 잠재웠다. 이런 내용이었다.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이름을 사용한 이유는 일반인에게 더 친숙하기 때문이었다. 프테라노돈이 비행 파충류지만 이 동물을 기술하는 데 ‘공룡’이란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돼온 것과 같은 이치다.”

보훈처는 어떨까. 당당한 논박이나 변호에 나설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러지 못할 것 같다. 4년 전엔 ‘포토샵’을 하고 지난 4월엔 “2010년 국가보훈처에서 발행한 ‘6·25전쟁 60주년 UN참전기념시설물 도감’을 확인한 결과 일본해 표기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박박 우긴 기관이 보훈처다. 이러니 지금 이 순간에도 혹여 뭔가를 지우고 감추느라 바쁘지는 않은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물론 다른 정부기관들을 제쳐놓고 보훈처에만 쌍심지를 켤 일인지도 의문이지만.

광복절이다.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동해 이름조차 제대로 못 지키는 정부 행태를 놓고 왈가왈부하게 되니 답답하고 한심하다. 입맛도 씁쓸하다. 한반도 주변은 ‘크고, 사납고, 게다가 멸종하지도 않은’ 강대국 천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고….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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