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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재의천기누설] 뛰는 제갈량 위에 나는 사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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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18 22:12:54 수정 : 2014-08-18 22: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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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에게 제갈량을 천거한 사마휘
삼국통일은 결국 사마휘 후손이
지난번 8월 5일자 ‘삼국지’ 칼럼의 속편이다. 현재 나이가 50, 60대면 대부분 읽은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삼국지’를 인용하겠다. ‘공명편’에서 유비가 채모의 계략에 빠져 죽기 직전 적로라는 말과 함께 단계라는 강을 건너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맑게 저물어 가는 저녁 하늘의 끝없음은 천지의 광대함과 아득함을 생각나게 한다. 흰 별, 희미한 초저녁 달… 현덕은 묵묵히 넓은 들판을 혼자 헤매며 간다. “아, 나도 벌써 47세가 되는데 이 외로운 그림자, 언제까지 하는 일 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것인가.” 문득 말을 세웠다. 멍하니 들판 저쪽의 저녁 안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한 줄기 길에 끝없는 미혹과 탄식을 품었다….’

최악의 죽을 고비를 넘긴 유비의 초라한 모습이 이렇게 그려졌다. 그러자 피리 소리와 함께 동자가 소를 타고 나타난다. 유비는 동자의 사부 사마휘 수경 선생을 만나기 위해 동자를 따라간다.

‘…안내를 받아 2리 정도 가니 숲 사이로 등불이 보였다. 그윽한 초당의 지붕이 안쪽에서 보이고 잔잔한 물소리에 귀를 씻으며 오솔길의 사립문을 들어서니 안에서 거문고 뜯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마휘는 동양화 속의 초당 같은 곳에 살고 있어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느끼게 한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이런 곳에 살다가 ‘신선’이 되고 싶지 않은가. 유비는 가서 아뢰라고 동자에게 부탁한다.

‘…뚝 하고 거문고 소리가 그치고 금세 노인 한 사람이 안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꾸짖었다. “누구냐, 거기 온 사람은? 지금 거문고를 타고 있는데, 그윽하고 맑은 소리가 갑자기 흐트러지고 살벌한 운율이 되었다. 창밖에 온 사람은 참혹한 전쟁터에서 헤매다가 온 무사 따위일 것이다. 이름을 말해라. 누구냐, 어떤 사람이냐?” 현덕은 놀라 슬그머니 그 사람을 살펴보니, 나이는 쉰 남짓, 소나무의 자태에 학의 몸체, 보기에도 청아한 선비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

동자가 굳이 아뢰지 않았어도 사마휘는 이렇게 방문객의 출현을 알고 있다. 방문객이 유비임을 확인한 사마휘는 반갑게 안으로 맞아들인다. 그러자 유비의 신세한탄이 한동안 이어진다. 결국 유비는 사마휘로부터 “어느 시대라고 결코 인물이 아주 없지는 않지요. 다만 그것을 참답게 이용하는 눈을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이지요.” “와룡이나 봉추, 그중의 한 명을 얻는다면 아마 천하는 손바닥에 있소.” 같은 귀중한 충고를 듣게 된다.

다음 날 유비는 조자룡에게 구출돼 신야의 성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며칠 후 사마휘가 찾아오는 바람에 다시 만나게 된다. 유비가 곧 와룡, 즉 제갈량을 만나러 갈 예정이라고 말하자 내가 ‘삼국지’를 읽으며 최고로 감탄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와룡 선생. 그 주군을 얻었다 해도, 안타깝게도 그때를 얻지 못했구나! 그때를 얻지 못했어!” 그리고 또 한 번 껄껄 웃으며 표연히 떠나버렸다….’

놀랍지 않은가! 사마휘는 제갈량이 유비와 손을 잡더라도 삼국통일은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물론 천문을 본 것이다.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제갈량이 천문을 꿰뚫어봤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제갈량은 자기가 삼국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끝까지 몰랐다. 그러니까 ‘출사표’를 올리고 수명 연장을 시도하면서까지 출정했던 것 아닌가.

사마휘는 제갈량보다 훨씬 단수가 높았던 것이다. 뛰는 제갈량 위에 나는 사마휘랄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성이 사마휘와 같은 사마염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다는 스토리가 주목된다. 사마휘는 자기 집안에서 삼국통일을 이룰 것도 미리 알았던 것은 아닐까.

사마염의 할아버지가 바로 사마의 중달이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 할 때 중달이 바로 사마의인 것이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어디에도 사마의와 사마휘 두 사람의 관계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사마의가 조조의 아들 조비의 신하였으니 나이로 보면 사마휘의 조카뻘 아니면 손자뻘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밤 사마의는 천문을 보고 깜짝 놀라며 또 기쁜 나머지 소리쳤다. “공명은 죽었다!” 그는 곧 좌우의 여러 장수에게도, 두 아들에게도 흥분해서 말했다….’

이 대목만 보더라도 사마의 역시 대단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사마의는 사마휘에게 천문을 배웠을 것이다. 사마의의 두 아들은 곧 사마사와 사마소이고 사마염은 사마소의 아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재주는 제갈량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마휘가 삼국통일에 개입한 것은 아닌지 의혹이 든다.

삼국통일이 애들 장난인가. 사마의로는 역부족 아닌가. 사마휘 정도는 돼야 이루어질 일 아닌가… 이런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쯧쯧, 중달이 녀석, 창피하게 죽은 공명에게 쫓겨 오다니…” 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아닌가.

하지만 나는 사마휘 정도 인물이면 속세 일에 개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삼국통일은 제갈량이 사마휘 말마따나 ‘때를 얻지 못해서’ 이루지 못한 일이었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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