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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준모의세계시선] ‘발트의 길’과 8월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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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18 22:14:09 수정 : 2014-08-18 22: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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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은 모든 면에서 자긍심이 강하다. 그리고 세계와 우주, 평화에 대한 동경심이 유달리 높다. 러시아어 단어 ‘미르’는 세계와 우주, 그리고 평화를 지칭한다. 하나의 단어에 서로 다르면서 연결이 가능한 크나큰 의미를 동시에 담은 러시아인의 지혜가 존경스럽다.

우준모 선문대 교수·국제정치학
러시아에 주안점을 두고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는 필자는 8월 하순이면 소련의 몰락을 촉발한 두 가지 큰 사건을 떠올리곤 한다. 먼저 25년 전 1989년 8월 23일 소련의 구성 공화국인 발트 3국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독립과 자유의 열망을 세계에 알리고자 자국의 수도인 탈린, 리가, 빌뉴스에 이르는 620㎞를 인간띠로 연결한 행사다. 3국의 시민 200여만명이 오후 7시를 기해 기나긴 길 위에 동시에 늘어서서 서로의 손을 잡고 15분간 독립과 자유를 외쳤던 이 사건은 이듬해 봄 3국 모두 독립을 성취하는 결실을 맺었다. 이 당시 3국의 인구를 다 합해도 800만명이 못됐으니 3국 국민의 독립과 자유를 향한 열망이 얼마나 간절했을지가 느껴진다. 이 행사는 ‘발트의 길(Baltic Way)’이라는 이름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다른 한 가지 사건은 1991년 8월 19일 발생한 소련의 ‘보수·군부 쿠데타’이다. 소련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만들어낸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였다. 공산주의 이념은 인간이성이 그려낼 수 있는 최고의 이상형에 가깝다. 그러나 현실에서 70년째 공산당 유일지배체제를 강요해온 1991년의 소련은 부패와 억압, 경제적 침체가 만연했다. 1985년 3월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젊은 지도자 고르바초프는 새로운 사고에 입각해서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을 모색했지만 그의 노력은 수십년 묵은 소련의 치부를 드러낼 뿐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옐친을 비롯한 급진개혁파들의 탈공산화 움직임은 소련의 국가체제 존립을 위협했다. 소련의 부통령과 총리, 몇몇 장관과 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 등은 일부의 군부를 끌어들여 쿠데타를 감행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을 저지하고 공산당의 강력한 중앙통제를 부활시켜 연방제 국가 소련을 지키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쿠데타는 3일천하로 막을 내렸고 구성 공화국들은 앞다퉈 독립했다. 그해 말 고르바초프는 유명무실한 대통령직에서 하야를 발표함으로써 소련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1989년 8월 발트 3국의 독립을 위한 인간띠 연결 행사와 1991년 8월 소련의 보수군부 쿠데타는 소연방의 몰락을 초래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두 사건 모두 사안의 중차대함에 비해 전개 양상은 평화적이었다. 전자의 경우는 공산당 중앙당국이 행사를 불허하고 참가자에 대한 무력해산과 진압이 가능했다. 후자의 경우에도 쿠데타 세력이 고르바초프나 옐친 등 반대세력에 대한 신속한 구속이나 처형 등 강경한 조치가 가능했다. 그러나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세계와 우주, 그리고 평화를 한 단어로 함축할 줄 아는 러시아인의 사고체계에서 대세를 폭력으로 거스르지 않는 지혜를 읽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우준모 선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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