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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낙동강 비경 품은 상주 비봉산·경천대

입력 : 2014-08-21 17:43:14 수정 : 2014-08-21 17: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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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산야 품은 물줄기…어머니 같아라
태백서 시작, 남해로 흘러드는 1300리 물길 중 가장 아름다운 풍광 자랑
강변 우뚝 솟은 암봉 경천대 옆 무우정엔 조선 선비의 굴곡진 삶 서려 있어
강원도 태백의 황지에서 발원해 남해로 흘러드는 낙동강 1300리 물길을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 경북 상주다. 낙동강은 상주의 옛 이름인 ‘상락(上洛)’의 동쪽으로 흘러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또 낙동강 유역에서 유일한 ‘낙동(洛東)’이라는 지명도 상주에 있다. 낙동면 낙동리인데, 이곳에는 조선시대 원산·강경·포항과 함께 4대 수산물 집산지로 꼽히는 낙동나루도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도 ‘태백산 황지와 경북 문경의 소백산에서 나온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적고 있으니, 이래저래 낙동강과 상주의 인연은 여간 각별한 게 아니다. 

낙동강의 풍광을 얘기할 때도 상주를 빼놓을 수 없다. 예로부터 낙동강 물길에서 가장 빼어난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곳이 상주의 경천대다. 낙동강 제1경으로 꼽히는 경천대는 오랫동안 상주의 대표 경승지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상주에는 외부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경천대 이외에도 빼어난 낙동강 전망을 보유한 곳이 여럿이다. 그중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곳이 비봉산이다. 산세가 봉황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경천대가 낙동강 물길 서쪽에 자리한다면 비봉산은 강 건너 조금 남쪽에 있다. 높이는 230m밖에 되지 않지만, 비봉산 아래로 펼쳐지는 낙동강 전경은 가히 일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비봉산은 8부 능선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다. 산 어깨쯤에 자리한 청룡사까지 좁고 가파르기는 하지만 포장도로가 연결돼 있다. 청룡사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정상에 닿는다. 조선 숙종 때 창건됐다는 청룡사는 이렇다 할 문화재도 없고 건물도 최근에 지어진 것이지만, 안마당 아래 펼쳐지는 시원한 낙동강 정경만으로도 찾을 만한 곳이다. 

경북 상주 비봉산 정상에 오르면 1300리 낙동강 물길에서 가장 빼어난 전망을 만나게 된다. 바로 아래로 청룡사 경내가 내려다보이고, 상류의 경천교에서 하류의 상주보까지 일망무제의 풍경이 펼쳐진다.
비봉산에는 두 개의 전망대가 있다. 청룡사에서 비봉산 정상으로 오르는 중간쯤에 하나가 있고, 비봉산 정상에 또 하나가 있다. 첫 번째 전망대에 오르면 상류의 경천교에서 하류의 상주보까지 일망무제의 경관이 펼쳐진다. 바로 앞으로는 인공섬으로 변한 경천섬과 그 건너 도남마을이 내려다보인다. 해질녘 이곳에서 맞는 해넘이도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바로 아래로 청룡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경천교 너머 상류 쪽 강과 산과 그리고 하늘이 빚는 아스라한 전경이 전개된다.

비봉산에서 멀지 않은 나각산 정상과 상주 활공장 역시 낙동강 전망이 빼어나다. 나각산 정상까지는 20분 정도 걸으면 되고, 상주 활공장까지는 포장도로가 연결돼 있다.

낙동강변에 우뚝 솟은 암봉인 경천대.
경천대가 예로부터 낙동강 최고의 경승지로 불리는 것은 단지 풍경만 빼어나서가 아니다. 여러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고, 그들의 이야기가 깊은 감회를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천대는 임진왜란 당시 ‘육지의 이순신’이라고 불린 명장 정기룡 장군이 젊은 시절 용마와 함께 수련을 쌓은 곳으로 전해진다. 입구에 정기룡 장군의 동상이 서 있는 것은 이 같은 연유에서다.

강변에 우뚝 솟은 암봉인 경천대에 올라 위태롭게 뿌리 내린 소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낙동강 풍경을 감상한 후에는 경천대에 바짝 붙여 지어진 정자 무우정에 눈길이 간다. 무우정은 우담 채득기가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무릎을 꿇은 ‘삼전도의 굴욕’에 울분을 삭이며 은거한 곳이다. 그 전까지 자천대로 불리던 이 암봉에 경천대라는 새 이름을 붙인 이도 채득기다. 그는 그후 우여곡절 끝에 세자와 대군을 따라 중국 심양으로 갔다 8년 만에 돌아온 후에도 벼슬을 마다하고 무우정에 칩거하다 마흔셋의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채득기가 심양으로 떠나며 하염없이 불렀던 노래가 ‘봉산곡’인데, 그 첫 구절이 “가노라 옥주봉아, 잘 있거라 경천대야”로 시작된다. 

조선 선비 채득기의 자취가 남아 있는 경천대와 무우정.
경천대 뒤 무지산(159m) 정상에 세워진 3층 높이의 전망대와 그 아래 포토존, 그리고 경천대에서 북쪽으로 300m쯤 떨어진 옥주봉을 둘러본 후 다시 찾은 경천대. 맑은 여름날 경천대 아래 낙동강은 거울처럼 고요하고 잔잔하다. 심지 굳은 조선 선비의 굴곡진 삶이 서려 있기 때문일까, 파란 하늘이 비치는 강물이 유난히 푸른색으로 빛난다.

상주=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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