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도 변경안이 나온 직접적인 계기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내려진 ‘황제노역’ 판결이다. 하루 노역 일당을 5억원으로 환산한 엉터리 판결이 바로 향판에 의해 내려졌다. 향판에 의해 저질러지는 황당한 판결은 황제노역 판결뿐이 아니다. 그 이면에 향판의 고질적인 유착 비리가 자리 잡고 있으니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사법 불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법원이 향판제를 폐지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번 개선안에 짧게는 10년, 길게는 평생 한 곳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향판제에 따른 유착비리를 차단하겠다는 뜻을 담은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곳곳이 허점투성이다. 특정지역 근무기간을 최장 7년으로 제한한 것부터 그렇다. 근무기간 상한을 7년으로 제한하면 유착 고리는 끊어질까. 7년도 긴 기간이다. 하물며 7년이 지난 뒤 다른 곳에서 잠깐 근무를 하고 다시 자신이 원하는 지역으로 가고자 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없다. 특정지역에서 계속 근무하고자 하는 법관에 대해서는 신청을 받아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사실상 향판을 유지하는 내용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이다. 이러고도 향판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법 신뢰는 무엇으로 회복할 것인가.
환부를 도려내는 전면적인 수술을 하지 않으면 향판의 폐해는 뿌리 뽑을 수 없다. 예외 없이 경향(京鄕) 교류 원칙에 따라 2∼3년마다 인사를 하는 강도 높은 쇄신이 필요하다. 세무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국세청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는가. 법관은 옮기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무늬만 개선’을 반복하니 전관예우도 사라질 리가 없다.
대법원은 ‘깨끗한 사법부’를 만들 의지는 갖고 있는가. 이런 식으로는 유착 비리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사법 불신만 깊게 할 따름이다. 국민에게 존경받는 사법부를 만들고 싶다면 진정한 개혁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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