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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따뜻한 얼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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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22 21:25:55 수정 : 2014-08-22 21: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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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태풍보다 강하다. 작은 물방울이 어우러지듯 작은 사랑의 몸짓도 뭉치면 거대한 바람이 된다. 사랑의 힘이다.

1983년 추운 겨울이었다. “올겨울 영하의 날씨로 얼어 죽는 노숙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TV를 보고 있던 한 미국 소년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넝마와 박스 더미 속에서 잠을 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소년의 가슴을 울렸다. 그는 부모를 졸라 담요와 베개를 챙겨 거리로 달려나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소년은 추운 거리로 향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헌 이불과 옷가지를 노숙인들에게 건넸다.

소년의 이야기는 금세 입소문을 타고 필라델피아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이웃 사람들이 옷을 갖고 오고, 음식점에선 먹을거리를 챙겨왔다. 소년의 이름을 딴 트레버 캠페인의 시작이다. 이 캠페인은 30여년 동안 노숙인들에게 200만끼 이상의 식사를 대접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안전한 집을 제공했다.

온몸이 마비되는 루게릭 환자들을 돕는 ‘얼음물 샤워’ 캠페인이 한반도에 상륙했다는 소식이다. 얼음물을 뒤집어쓰고 기부금을 내는 미국의 릴레이 이벤트가 태평양을 건너온 것이다. 참가자는 샤워 장면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뒤 다음 도전자 3명을 지목해야 한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영화배우 최민식이 얼음물을 뒤집어썼다. 해외에선 이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가 동참했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부인 로라 부시한테서 얼음물 세례를 받았다.

차가운 얼음이 이토록 따뜻해질 수 있다니! 여럿이 온기를 모으면 얼음까지도 따스하게 데울 수 있는 법이다. 호주 원주민 부족에는 ‘스리도그나이트(three dog night)’라는 말이 있다. 원주민들은 추운 겨울이면 개를 끌어안고 잔다. 개의 온기를 빌려 추위를 이겨내는 풍습이다. 한 마리로 추위를 견딜 수 없으면 두 마리로, 그 걸로도 안 되면 세 마리를 데리고 잔다. 스리도그나이트는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추운 날이다.

세상의 추위가 어찌 개 세 마리로 해소되겠는가. 삶은 풍족해졌지만 세상은 자꾸 추워지고 있다. 한파를 녹이는 데에는 사람 온기만한 게 없다. 타인의 아픔을 나누고 어루만져주는 체온 말이다. 차가운 얼음을 데우는 것은 사람의 따뜻한 가슴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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