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정진의청심청담] 교황, 영화 명량, 오늘의 역사를 생각하며

관련이슈 박정진의 청심청담

입력 : 2014-08-25 21:45:04 수정 : 2014-08-25 21:54:2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참으로 한국은 평화를 애호하는 나라이다. 자기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 도가 지나쳐서 때로는 주체적인 생각은 없고, 온통 자신을 세계에 내주고 만다. 자기 생각은 없고, 외래에서 심어준 도그마만 가득한 나라이다. 철학은 없고 종교만 있는 나라이다. 자신의 믿음과 절대 선(善)·정의(正義)만을 주장하고 상대방과는 대화와 소통을 하지 않고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기도 한다. 세월호 특별법의 통과는 오리무중에 있고, 함께 묶여 있는 민생법안은 잠자고 있다. 세월호가 다시 광우병 파동처럼 나라의 지축을 흔들어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와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갔다. 인자하게 보이는 부처 같은 교황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고 방한 일정을 끝내고 출국했다. 교황은 방한기간 중에 광화문에서 열린 순교자 124위 시복식을 거행했으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대전월드컵 경기장),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해미 읍성)도 집전했다. 4박5일 동안 연일 ‘비바 파파(viva papa)’의 함성을 들으며 기분 좋은 날들을 보냈을 것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한편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영웅담을 다룬 영화 ‘명량’이 관객 수 1600만명을 돌파하는 등 한국 영화의 신기록들을 갈아치우고 있다. 머지않아 총 관객 수에서도 세계적인 ‘아바타’를 넘어설 전망이라고 한다.

교황방문, 명량해전 등이 장안의 화제가 되는 동안에 갑자기 박지원 의원 일행이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5주기를 맞아 김정은의 조화를 받으러 간다는 명목으로 방북을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화를 받으러 오라는 태도와 저의가 의심스럽다. 조화는 본래 보내는 쪽에서 진심과 성의를 다해서 보내는 것인데 받으러 오라는 태도는 오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고 받으러 가는 사람은 또 무엇이고.

이런저런 일들 속에서 국가의 권위와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일들만 생긴다. 예의라는 것은 항상 적당한 것이 좋다. 교황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항영접을 받으며 한국에 들어왔다. 아마도 한국만큼 국가원수가 교황을 모신 나라는 드물 것이다.

청와대 코앞, 한국의 안방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로 광화문광장을 천주교 행사장으로 내주었고, 대통령은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도 참석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교황을 마치 구원의 메시지라도 들고 오는 듯 떠받들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항상 빈자의 편에선 교황으로, 검소와 겸손, 그리고 인자한 미소를 시종 잃지 않는 훌륭한 분이지만, 그가 특별히 한국을 위해, 예컨대 남북대치 상황에서 통일 촉구나 핵 폐기 등 평화 촉구 등의 발언을 한 적은 없다. 교황이 도착하기 직전과 직후에 북한은 단거리 로켓 5발을 발사했다. AP통신은 “남북협력과 화해에 대해서 교황은 성과 없는 서로에 대한 비난을 피해야 한다고 말하고, 박 대통령에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용서와 존중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서도 미사 참여 등 특별한 배려를 했다. 우리 국민들은 내심 어떤 기대에 차 있었던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이번 교황 방한에서 한국 가톨릭의 위상이 제고되었음은 확실하다.

교황 방한 중에 필자는 전남 구례를 찾는 기회가 있었고, 때마침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길을 답사하게 되었다. 구례 백의종군 길은 산수유 시목지에서 시작했다. 그곳에는 이순신의 행적과 ‘난중일기’에 나오는 유명 구절을 성채 모형 길에 새겨서 전시하고 있었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若無湖南是無國家).” 역사에는 가정이 필요 없지만, 당시 전라좌우영의 이순신이 없었으면 조선은 일본에 완전히 점령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라의 어지러움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호남이 있어도 국가가 없다(有湖南而無國家).”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과연 미국이 없으면 대한민국이 유지될 것인가. 이순신의 구절을 다시 패러디해 보았다. “미국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若無美國是無國家).”

‘명량’해전은 이순신이 12척의 배로 왜선 300여척을 물리친, 세계 해전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쟁영웅을 다룬 역사물이다. 임란 후 조선의 선비들은 침략을 당한 것에 대한 반성도 없었고, 대책도 없었다. 전쟁 전과 똑같은 자세로 당쟁을 일삼았다. ‘난중일기’조차도 정조의 어명으로 간행되었다. 정조는 청룡도를 휘두를 정도로 무예에 대한 조예가 있었고, ‘조선무예도보통지’라는 무경(武經)을 집대성하도록 한 군주였기에 어명을 내렸을 것이다. 이순신의 위대성은 일본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세계화되었다. 일본의 압도적인 수군이 어째서 일개 장수 이순신에게 패했는가를 연구하던 중 이순신의 승전은 세계해전사상 그 유례가 없었다는 것을 밝혀내기에 이른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尙有十二隻 微臣不死).”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必生卽死 死必卽生).”

임란 발발(1592년 4월 14일 부산포 침입) 후 왜적은 파죽지세로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을 점령했다. 선조는 20일 만(5월 2일)에 한양을 내주고 몽진 길에 오른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있을 때 이순신이 첫 승전보를 올린 곳이 바로 옥포대첩이다. 이순신은 이어 한산도대첩에서 승리를 거두고 바다의 해상권을 장악했다. 일본은 이순신이 전장에 있는 한 도저히 승산이 없음을 알고, 거짓 정보를 흘려서 첩보전을 벌이고, 이 첩보전에 못난 조정이 당한 것이 이순신의 하옥사건이고 백의종군이다. 이순신의 명언 중에 오늘의 우리가 되새겨야 할 대목은 다음이다. “나라는 위기에 처했는데 쓸데없이 눈앞의 이익에만 힘쓰고 있다(爲國之痛兪心).”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