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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살로 고기 잡고 함께 유영하고… 아마존 온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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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28 21:32:37 수정 : 2014-12-22 17: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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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29〉 물고기를 따라 무인도에 가다
도미니카공화국의 보카치카는 작은 해변마을로, 이 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던 그 푸른 바다를 지니고 있다. 수심이 낮아서 멀리까지도 수영을 해서 나가곤 했다. 물이 맑아서 물고기들도 잘 보인다. 더 멀리 나가면 물고기는 더 많이 보이고, 눈앞에 보이는 작은 섬에도 갈 수 있을 거 같아 가보기로 했다.

수영으로 가기에는 먼 거리다. 그래서 발로 젓는 오리배 비슷한 배를 빌려 타고 바다로 나가본다. 뭍에서만 봤던 섬에 닿을 때쯤에는 지쳐 있었다. 햇빛도 피하고 싶었고, 다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생업으로 고기를 잡는 현지 어민들의 조각배.
섬에 대충 배를 묶어 놓고 섬을 구경했다. 무인도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작은 섬이다. 땅이 있긴 한데,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땅은 아니다. 나무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나무가 섬을 뒤엎었다. 그 나무는 도미니카공화국뿐 아니라 중남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뿌리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 다시 아래로 내려온다. 치렁치렁한 뿌리들이 나뭇가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역으로 올라가 다시 내려오고 있다. 이 나무들이 정글처럼 보이게 만든다. 뭍의 길거리에서는 많이 봤지만, 물에서 자라는 나무는 처음 봤다. 좁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올라간 나무는 비좁게 자랐다. 나뭇가지에서 내려온 뿌리는 물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섬 주변 바다는 수심이 다시 낮아졌다. 스노클링하기에 좋다. 물고기들이 훨씬 많이 돌아다닌다. 물고기과 같이 헤엄을 쳐서 섬 주변을 돌았다. 이 섬에서 보는 뭍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육지가 아니라 섬처럼 느껴진다. 그것도 틀린 말이 아닌 것이 도미니카공화국 자체가 섬이 아닌가.

스노클링을 즐기는 내 주변에는 나와는 다른 목적으로 자맥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 물속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작살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이미 몇 마리를 꿰차고 있었다. 큰 물고기를 노려서 작살 하나만으로 명중시킨다. 작살이 고무줄에 의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막대기에 창살을 붙인 것뿐이다. 제법 큰 물고기를 잡는 현지인의 모습이 마치 아마존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저 앞에 보이는 무인도까지 가보기로 했다.
나는 놀러 왔지만 이들에게는 이 바다가 생활터전이다. 생업을 위해 이 바다를 찾은 다른 현지인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작은 배를 타고 왔는데 그들은 더 놀라운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큰 그물을 배 위에서 던져서 한번에 많은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 그물을 던지고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들어 올리는데 물고기들이 잔뜩 잡혀 있다. 파닥파닥 뛰는 작은 물고기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장면이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다.

배 안에는 물고기들이 잔뜩 쌓여갔다. 신기해하는 나에게 그 어부는 물고기를 원하냐고 물어왔다.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시(Si·네)”라고 대답했다. 그가 물고기 한 바가지를 퍼서 내 오리배에 던져줬다. 절반쯤은 바다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많은 물고기가 남았다. 멸치과의 제법 큰 생선을 막상 받아는 왔지만 어떻게 할지는 판단이 안 선다. 일단 물고기를 비닐봉지에 넣어 놓았다. 나중에 친해진 현지인에게 줬는데, 그가 실제로 먹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기이한 모양의 나무.
나는 보카치카에서 현지인과 관광객의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지인의 해변과 관광객의 해변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항상 그 중간에서 지냈다. 숙소에 있는 사람이라곤 일하는 직원과 유일한 투숙객인 나뿐이다. 그러니 저녁에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술 한잔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주인 남자는 보카치카의 지역 유지쯤 되는 사람으로 미국에 쇼핑을 하러 간단다. 이 남자의 어머니인 이 지역 최고령 할머니를 위해서 미국을 간다고 했다. 할머니와도 인사를 나눴는데, 인상이 아주 좋았다.

리조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이 호텔이 여기서 높은 건물이었다. 해변가에 더 높은 리조트들이 들어서면서 이 호텔은 전망도 망쳤고, 점점 손님이 줄어들었단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개의치 않는다. 가끔은 나 같은 여행자가 찾아 온단다. 그러면 그 사람들과 이렇게 술 한잔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나 또한 행복해진다. 

현지 아이들에게 해변에서 두꺼비집 만드는 걸 알려주니, 성을 만들었다.
마을에는 야자나무로 어설프게 실내장식을 한 식당이 있다. 스파게티를 내놓는다고 써 있어 믿기지 않지만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빵을 식당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에서 직접 썰어서 주는데 깜짝 놀랐다. 너무 맛있는 바게트다. 이 식당 주인은 도미니카공화국 사람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사람으로 도미니카공화국 여자와 결혼을 했단다. 보카치카가 너무 좋아서 이곳에 식당을 차렸다고 한다. 이탈리아인이 만드는 스파게티라면 믿고 시켜도 된다. 역시 유럽에서 먹던 맛 그대로다.

내가 칭찬을 아끼지 않자, 주인아저씨도 식당 자랑을 이어갔다. 잡지에 나온 자기네 식당을 보여줬다. 알고 보니 이 아저씨가 보통 이탈리아인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요리사로 나름 유명한 사람이었다. 맛없던 파스타만 먹다가 훌륭한 요리를 맛봐서 이 식당을 좋아하게 됐다. 완벽하게 구워진 스테이크도 맛있다. 와인 한 잔을 달라고 해서 마시니, 이곳이 어디인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아름답기만 했던 바다가 무서울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며칠 후였다. 갑자기 온 몸이 따갑기 시작했다. 해파리 같은 독을 가진 생물체는 주변에 없었는데, 독에 쏘인 것처럼 아파서 물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말하길, ‘메두사’라고 부르는 생물체가 뿜은 독이란다. 심하진 않고 간지럽기만 하니까 몇 시간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며 안심시켜줬다. 바다 바닥에서 살고 있는 메두사를 내가 발로 건드렸나 보다. 독을 물에 퍼트리기 때문에 온 몸이 다 따끔거렸던 것이다.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는 이처럼 장미 가시처럼 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를 가진 보카치카를 떠나 다음 행선지를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도미니카공화국의 바다를 따라 북쪽까지 가기로 정했다. 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마을이 있으면 머물고, 다음 행선지로 떠나기로 했다. 특별히 계획을 짜지 않더라도 갈 곳은 많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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