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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의 균형은 ‘헛소리’… 더 일하라”

입력 : 2014-08-30 00:46:52 수정 : 2014-08-30 0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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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있는 삶’ 갈증 느끼는 요즘 , “더 많은 노동 필요” 당당히 주장
“행복 위해선 꼭 좋은 노동 해야,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결국 성공”
독일인 저자 ‘노동’ 적극 옹호
토마스 바셰크 지음/이재영 옮김/열림원/1만5000원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토마스 바셰크 지음/이재영 옮김/열림원/1만5000원


독일어 ‘파이어아벤트(feierabend)’는 우리말로 ‘퇴근’을 뜻한다. 그런데 이 단어는 ‘죽음’이란 뜻도 있다. 일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과 사람의 목숨이 끊어진다는 뜻이 한 낱말 안에 공존하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일을 손에서 놓는 순간 더 이상 존재의 가치가 없는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걸까.

한 정치인이 만들어낸 ‘저녁이 있는 삶’이란 말이 단박에 유행어가 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여가에 갈증을 느낀다. 직장인이라면 연휴 마지막 날 갑자기 뒷목이 저리고 까닭 없이 우울해지는 증상을 누구나 겪었을 것이다. 정시퇴근을 못하고 야근이라도 해야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자”는 목소리가 대세인 작금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책이 나왔다. “우리에겐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고 대놓고 주장하는 저자는 하필 독일인이다. 그렇다고 무슨 히틀러나 나치의 부활로 단정해선 곤란하다. 저자는 월급쟁이와 자유기고가를 거쳐 지금은 잡지사 편집장으로 일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남성이다.

책에 따르면 독일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설문조사를 했다. “만약 당신이 1000만유로(약 140억원)의 복권에 당첨되면 직장을 때려치우겠느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15%만 “그렇다”고 답했다. 저자가 실제로 거액의 복권 당첨자 14명을 추적해보니 직장을 그만둔 이는 단 2명뿐이었다. 사람들은 ‘돈’도 원하지만 그 이상으로 ‘일’도 원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헤겔, 마르크스, 한나 아렌트, 위르겐 하버마스 등 독일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이 노동에 관해 설파한 내용을 샅샅이 살펴본 뒤 “그들은 틀렸다”고 말한다. 이 위대한 사상가들은 노동을 고작 ‘도구’로 여기거나,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의 표현쯤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인류의 진정한 해방”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대해 저자는 한마디로 ‘헛소리’라고 단언한다.

축구로 먹고사는 축구선수에게 축구는 놀이가 아니라 엄연히 일이자 노동이다. 이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며 즐긴 결과가 세계 정상이라면 그 보람과 기쁨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한 독일 대표팀 선수들이 우승컵을 든 채 환호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노동에 악담을 퍼붓는 것은 사람들의 욕구를 무시하는 처사다. 독일 연방통계청이 2011년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5세부터 74세까지의 약 700만명이 일자리를 갖길 원하거나 현재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하고자 했다. … 이런 조사 결과만 봐도 노동이 여전히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돈 문제만은 아니다.”

그럼 노동은 무조건 신성한 걸까. 책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노동’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는 좋은 노동의 핵심적 요소는 다름아닌 ‘몰입’이다. 여기 일이 좋아 한번 빠져들면 쉴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호사가들은 그를 ‘일중독증 환자’라고 부르며 불쌍히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쌍한’ 이들이 결국 성공해 본인도 부자로 살고 남에게도 베푸는 모습을 우리는 거의 매일 목격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저자를 비롯한 독일인들에게는 혹시 열심히 일하는 유전자가 있는 것 아닌지 궁금해진다. 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의 다른 대국들이 모두 경제난을 호소하는 가운데 독일만 ‘독야청청’하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우연인지 몰라도 독일 못지않은 축구 강국인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지난 브라질 월드컵에서 완전히 몰락한 반면 독일은 남의 대륙에서 우승컵을 거머쥔 첫 유럽 국가가 됐다. 경제대국 독일의 저력을 새삼 일깨우는 책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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