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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택의新온고지신] 등화가친(燈火可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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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01 21:27:25 수정 : 2014-09-01 21: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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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의 계절, 가을이 코앞에 왔다. 아직 한낮의 기온은 만만치 않지만 하늘색과 물빛, 바람의 느낌이 다르다. 선선한 기운이 가슴 속으로 들어오고, 숲은 고아(高雅)함을 더하고 있다. 그렇다. 가을이라 빛이 더욱 선명한 까닭에 들녘은 풍요를 준비하고, 개울물은 날로 영글어 가면서 세월의 애잔함이 묻어난다.

대문장가 ‘왕유(王維)’의 당시(唐詩) ‘은거하는 친구 배적에게 부치는 글’은 초가을의 정취를 한 폭 동양화처럼 보여주고 있다.

“차가워진 산이 푸르스름하게 변하고, 가을 물은 날로 불어가네./ 지팡이 짚고 사립문 밖에서 바람결에 저녁 매미 소리 듣네./ 나루에는 지는 해 남아 있고, 마을엔 외로운 한 가닥 연기 피어오르네(寒山轉蒼翠 秋水日潺湲 倚仗柴門外 臨風聽暮蟬 渡頭餘落日 墟里上孤煙) ….”

이처럼 가을은 세월의 빠름과 유한함을 알게 하면서, 부귀영화에 초탈하는 기개를 갖게도 한다. 조선 중기 문인으로서 이퇴계 윤두서 등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문하에서 김인후 기대승 정철 임제 등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한 송순(宋純)은 시 ‘어부(漁父)’에서 가을에 맞는 세상살이를 이렇게 노래했다.

가을 강 백리가 잔잔하고도 텅 비어서/ 가벼운 거룻배 가는 곳 가만히 들어본다./ 사람들아 미끼에 다투면서 웃지를 말아라/ 위수강가의 낚싯대엔 고기 물리지 않는다(秋江百里正平虛 泛泛輕?聽所如 莫學群兒爭笑餌 渭翕竿下不歸魚).”

세상이 어떻든, 홍진(紅塵)에 물들지 말고 나의 속사람을 채워야겠다. 독서다. 가을은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기에 하는 말이다. 책을 가까이 하는 데 나이가 있을 수 없다.

청나라의 장조(張潮)는 저서 ‘유몽영(幽夢影)’에서 “젊은 시절의 독서는 틈새로 달을 엿보는 것과 같고, 중년의 책 읽기는 뜰 가운데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누각 위에서 달을 구경하는 것과 같다”고 했잖은가.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소장

燈火可親:‘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의미로서 책 읽기에 좋은 가을’을 뜻함.

燈 등 등, 火 불 화, 可 옳을 가, 親 친할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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