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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섣부른 대응…아프리카 교민사회 직격탄

입력 : 2014-09-01 19:46:58 수정 : 2014-09-02 01: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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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인이라는 게 정말 창피합니다.”

지난달 29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만난 한국 교민의 한마디가 가슴에 날카롭게 박혔다. 급성 열성감염병인 에볼라가 서아프리카에서 발병하자, 국제행사에 아프리카인의 참석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아프리카 대륙에 하나뿐인 국적기 노선을 잠정 폐쇄한 한국을 두고 한 얘기다.

세계일보는 지난 25∼29일 동아프리카의 허브인 케냐를 찾았다. 엠부와 나이바샤, 키수무, 나로크 등 수도 나이로비를 중심으로 최대 340㎞ 떨어져 있는 여러 지역을 둘러봤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교류가 빈번한 나이로비뿐만 아니라 말라리아와 에이즈 등 전염병 창궐로 골치를 앓고 있는 키수무에서조차 에볼라는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이로비에서 만난 운전기사 안토니씨는 “테러는 걱정해도 내 주변의 누구도 에볼라를 걱정하지는 않는다”면서 “케냐는 관광산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가 에볼라로 관광에 타격을 입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케냐에서 만난 사람들은 “에볼라 때문에 서아프리카도 아닌 케냐 항공 노선을 중단시킨 것은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한항공의 노선 잠정 중단은 영국의 BBC 등 외국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됐다.

교민사회는 직격탄을 맞았다. 나이로비에서 한인 대상 숙박업소를 운영 중인 한 교민은 “숙박 예약이 대한항공 운항 중단으로 전부 취소됐다”면서 “교민 경제에 타격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날씨가 덥고 홍수가 빈번해 말라리아 등 전염병이 극성을 부리는 케냐 키수무 지역의 아헤롭(사랑이 있는 곳이라는 뜻) 마을에서 한 아이가 카메라를 보고 해맑게 웃고 있다.
케냐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인턴은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에볼라 등 전염병 퇴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를 논하기는커녕 아프리카 사람을 거부하고 문제 해결에 등을 돌리는 등 세계시민으로서 우리의 의식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염병 문제를 연구하는 국립 케냐의료·의학연구센터의 키데코 박사는 “중국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고 아프리카에 중국사람들을 입국하지 못하게 막을 수 없고, 에이즈 때문에 여행을 금지하지는 않는다”면서 “미국과 영국, 스페인은 에볼라에 걸린 자국민들도 데려갔는데 병도 안 걸린 아프리카 사람들을 오지 말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정부가 질병과 예방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국민에게 제공해 두려움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이로비 유엔환경계획(UNEP) 본부에서 만난 이브라힘 티아우 사무차장도 “우리는 지구라는 하나의 행성에 살고 있고 그중 한군데서 일어나는 일은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대표적인 예가 에볼라”라면서 “비행기는 막아도 걸어서 움직이는 사람은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재앙이 일어날 때 한국만 피해갈 수는 없다”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직면하고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문제에 등을 돌리고 일어나는 대로 두는 것, 어느 것이 더 맞겠느냐”고 반문했다.

케냐=윤지희 기자 phh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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