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의 주역인 강석주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제담당)가 조만간 유럽 순방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중·하순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하는 일정과 맞물려 김 제1위원장이 고립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외교적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
복수 소식통에 따르면 강 비서는 이르면 이번주 주말부터 약 열흘 일정으로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차례로 방문한다.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에선 EU 측과의 일정도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형식적으로는 방문국 정당과의 당 대 당 교류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 비서의 유럽 순방을 단순한 정당 행사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가 김 제1위원장 체제에서 북한 외교를 총괄하는 당 국제담당 비서라는 점에서다. 당 우위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리 외무상(장관)보다 윗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거물이 움직이는 만큼 유럽 방문에서 미국, 일본과 의미 있는 접촉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식의 전방위적인 다변화, 다각화 외교 공세가 본격화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3월31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무력 건설·경제 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며 핵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 이 같은 외교 노선을 결정했다. 사진은 김 제1위원장이 지난해 3월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노동신문 |
강 비서의 스위스 방문 시기(11∼13일)에는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일본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 담당상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국제 심포지엄(10일)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북·일 고위급 접촉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북·미 접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비공개 접촉을 한 전례가 있다. 최근 미국 정부 당국자의 평양 극비 방문설이 나오기도 했다. 강 비서가 유럽 순방을 위해서는 중국 베이징을 거쳐야 해 그동안 동결된 중국 고위 인사와의 회동 여부도 주목된다.
강 비서의 유럽 순방에는 김정은체제의 다변화·다각화 외교 전략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지난해 3월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후 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다변화 외교 노선을 채택했다. 다변화 외교 전략은 대미, 대남, 대중 관계에만 의존하지 않고 일본, 러시아,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외교전을 펼치겠다는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
통일문제 전문사이트인 민족21 정창현 대표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북한이 내부적으로 핵 보유국이 됐다고 보고 이제 핵 보유의 정당성을 선전하고 경제 건설에 매진하기위해 외교전을 통해 우호적인 국제환경 개선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청중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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