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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배려의 미학 담긴 홍성 사운고택

입력 : 2014-09-04 20:13:08 수정 : 2014-09-04 23: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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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고 기품 있는 양주 조씨 종가
안사랑채 따로 있어 여성들 배려한 전통 느껴져
팔각 창 팔각 기둥… 은은한 멋까지
선대 할머니 한글로 요리책 써 전수
충남 홍성군 장곡면 산성리 309(흥남동로 989-22)의 사운고택은 국가문화재 중요민속자료 198호로 지정된 정갈하고 기품 있는 고택이다. 350년 전에 지어진 이 집은 양주 조씨 충정공파의 종가로, 현 소유주인 조환웅씨의 고종조인 조중세의 호인 ‘사운(士雲)’에서 택호를 따왔다. 사운은 구름 같은 선비라는 뜻이다.

우화정이라고 불리는 사랑채의 수루.
사운고택의 또 다른 이름은 ‘우화정(雨花亭)’이다. 꽃비가 내리는 정자라는 의미로, 조선 영조때 문신인 자하 신위(1769∼1847)가 이곳에 머물때 봄철 사랑채 수루앞 벚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붙였다고 한다. 그 후 집을 개축하는 과정에서 벚나무는 없어졌지만, 지금도 사랑채 끝 수루에 앉으면 창문 밖으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수루 안에는 조선 3대 묵죽화가로 불렸던 신위가 쓴 우화정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수루 밖에는 ‘낮잠 자는 집’이라는 뜻의 ‘수루(睡褸)’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누마루 아래에는 회벽에 기와로 ‘천하태평(天下太平)’이라는 글씨를, 그 사이에는 건곤감리의 팔괘 무늬를 들였다.

우화정이라고 불리는 사랑채의 수루.
사운, 우화정, 수루, 천하태평 등의 글자에 담긴 멋을 되새겨보고 고택의 아름다움을 감상한 후에도 이 종가에는 더 살펴보아야 할 게 여럿이다. ‘음식방문니라’. ‘음식을 만드는 법이다’라는 뜻의 한글 요리책으로, 조씨의 증조할머니인 숙부인 전의 이씨가 집안 대대로 이어 내려온 음식문화를 기록했다. 조선시대 요리서로는 정부인 안동장씨의 ‘음식 디미방’이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69가지 음식 조리법이 실린 ‘음식방문니라’도 조선 전통음식문화 연구의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지금도 이 종가에서는 종종 ‘음식방문니라’가 전하는 몇몇 음식을 즐긴다. 우족을 고와 간을 한 ‘족편’, 암탉에 일곱 가지 재료를 넣어 중탕을 한 ‘칠향계’ 등이 대표적인 음식들이다. 

추석 명절을 앞둔 이 즈음 사운고택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 배려의 전통이다. 이 고택에는 특이하게 안사랑채가 따로 있다. 안채 동편에 자리한 이곳은 여자들만을 위한 공간이다.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를 넘긴 종부가 머물던 곳이지만, 집안의 여자 손님들을 맞는 접객 장소로도 쓰였다. 며느리의 친정 가족들이 방문했을 때도 이곳에서 불편하지 않게 기거할 수 있었다. 

여자들의 공간이었던 안사랑채의 팔각 창.
사운고택 사랑채의 마루.
안사랑채는 집안에서 가장 공들여 지은 공간이기도 했다. 창은 팔각으로 만들었고, 천장에도 ‘우물 정(井)’ 자 문양을 들였다. 기둥도 일일이 모서리를 깎아 팔각으로 만드는 등 멋을 냈다. 또 이 집에서는 며느리를 비롯한 집안 여성들도 제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제사, 차례 음식도 간소하게 차렸다. 궁핍한 이웃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요란하게 음식을 차리지 않은 것이지만, 집안 여성들의 일손을 덜어주려는 배려도 담겨 있다.

지금 사운고택은 11대 종부인 서규순(84)씨와 12대 종손인 조환웅(64)씨 부부가 지키고 있다. 12대 종부 최금숙(57)씨는 “남녀의 영역을 구분 짓고, 여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게 이 집안의 전통”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서씨나 최씨 모두 이 집에 시집와서 별다른 마음고생 없이 살았다고 말한다.

충남 홍성 사운고택에는 예로부터 여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전통이 전해 내려왔다. 그래서 이 집 며느리들은 별 어려움 없이 시집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60년간 종가를 지킨 11대 종부 서규순(84)씨와 그의 장남인 12대 종손 조환웅(64)씨가 사랑채 대청마루에 앉아 초가을 햇살을 즐기고 있다.
종부와 종손.
왜 사운고택 사람들이라고 고부갈등이 없었고, 시집살이의 어려움이 없었을까. 그러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 있어 이 집 사람들은 부녀자들을 대하며 조금 더 조심하고, 한 번 더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며느리들도 시집에서 생활하기가 한결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며칠 후면 추석 명절이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명절이면 주부들은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족들이 서로 배려하고 조심해야 모두에게 즐거운 명절이 될 수 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을 앞두고 사운고택의 전통을 한번쯤 되새겨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홍성=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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