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계단 오르면 수령 400년 장대한 느티나무
탁 트인 배경에 아름다운 일몰 풍경 유명
황금새 전설 담은 대조사엔 거대한 불상 있어
부여 여행을 계획한다면 대개는 낙화암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궁남지 등 옛 사비성 안쪽의 유적을 떠올린다. 예전에 수학여행이나 답사를 다녀온 중장년층이 기억하는 부여의 명소도 대부분 이곳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부여읍을 감싸고 있던 옛 사비성 밖에도 숱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다. 그래서 사비성 안쪽의 유적만을 둘러본다면 백제의 절반, 부여의 절반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비성 밖에서 가장 먼저 가볼 곳은 임천면의 성흥산성과 대조사다. 두 곳은 웅진(공주)시대에서 사비(부여)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백제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동성왕은 사비로 세 차례 사냥을 나갔다. 이때 웅진 도성에서는 괴이한 일이 잇따랐다. 동성왕이 부여로 사냥을 간 것을 두고 후대 사가들은 ‘부여로의 천도를 모색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동성왕은 부여 땅에 성흥산성(당시 가림성)을 쌓고 위사좌평인 백가를 성주로 내려보냈으나, 지방 전출에 불만을 품은 백가는 동성왕을 살해하고 만다. 결국 백제는 동성왕 이후 무령왕을 거쳐 성왕 때 사비로 도읍을 옮긴다.
부여 옛 사비성 바깥의 유적으로 손꼽히는 게 성흥산성이다. 웅진시대에서 사비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백제의 자취가 이곳에 남아 있다. 산성 위에는 수령 400년쯤 되는 느티나무가 옛 백제 땅을 굽어보며 늠름하게 서 있다. |
성흥산성 바로 아래 자리한 대조사의 석조미륵보살 입상. |
백제왕릉원으로 불리는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왕이나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사비성 외성 동쪽 바깥에 자리한 곳으로, 고분군과 외성 사이에는 절터가 있다. 왕릉 옆에 세운 절을 ‘능사’라고 부르는데, 이 절터는 지명을 빌려 ‘능산리사지’라고도 불린다. 이곳에서 1993년 백제 문화재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금동대향로가 출토됐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금동대향로가 16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완벽한 형태로 발견된 것은 공주 무령왕릉 발굴에 버금가는 고고학적 대사건이었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 |
부여=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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