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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전쟁할 각오 없인 평화 못 지켜"

입력 : 2014-09-15 14:59:56 수정 : 2014-09-15 17: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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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오른쪽)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민동석 사무총장에게서 평화친선대사 위촉장을 받은 직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쟁을 할 의지가 없이는 평화를 지킬 수 없습니다. 평화를 지키려면 싸울 의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고은(81) 시인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전쟁도 불사할 수 있는 결연한 용기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고 시인은 15일 서울 명동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열린 평화친선대사 위촉식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고 시인이 평화를 위해 노력한 점을 높이 평가해 평화친선대사로 위촉했다.

고 시인은 광복과 6·25 전쟁 직후 명동이 폐허이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거론하는 것으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1920년대 창간한 시 전문 동인지 ‘폐허’의 동인이었던 원로 문인들에 얽힌 추억이다.

“오상순, 변영로, 황석우 선생 세 분이 백주대낮에 명동 일대에서 서로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때리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까마득한 후배인 제가 ‘선생님들 이러지 마십시오’라며 말리다가 하도 말을 안 들으니까 나중에는 반말로 ‘이 사람들, 이거 왜 이래’라고 했죠.(웃음) 그때 보니까 변영로 선생은 참 싸움을 잘해요. 그런데 오상순 선생은 계속 얻어맞기만 하더군요. 저도 오 선생과 비슷하게 승부욕이 없습니다. 장기를 두면 빨리 끝내려고 일부러 져주곤 하죠.”

자신이 승부욕과 경쟁심이 없음을 고백한 고 시인은 “평화를 지키려면 싸울 의지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저 같은 사람을 평화친선대사로 위촉한 건 분에 넘치게 명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제가 이 직분을 책임질 수 있을지 염려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그동안 평화에 관한 시를 많이 써 국제 시단에 알려 온 만큼 자격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고 덧붙였다.

고은 시인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평화친선대사 위촉식에서 낭송한 시 ‘유네스코에게’의 육필 원고. “그대 앞에서/ 폭력이여 울어라/ 무지여 울어라// 하나의 돌기둥이 조상의 영광인 것/ 하나의 메아리가 자손의 명예인 것/ 이토록 지상의 오랜 의미를 세우는 자/ 그 누구인가// 그대의 숙연한 이름 유네스코에 우리는 모여든다.”라고 적었다.

고 시인은 “앞으로는 평범한 서정시인을 넘어 한국과 동아시아 평화, 더 나아가 아시아 전체와 세계 평화를 위해 평생 매진할 것을 맹세한다”고 강조했다. 고 시인은 평화친선대사를 수락하는 뜻에서 자작시 ‘유네스코에게’를 특유의 열정적인 목소리로 직접 낭송해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한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민동석 사무총장은 위촉식에 앞서 고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원하는 덕담을 건네 눈길을 끌었다. 지난 8월 마케도니아 스트루가에서 열린 고 시인의 황금화관상 시상식에 동행했던 민 총장은 “역대 황금화관상 수상자 가운데 4명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며 “시상식에 참석한 영국 문단 관계자가 고 시인에게 ‘다음에 받을 상이 무엇인지 기대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위촉식장에는 고 시인의 부인 이상화(67) 중앙대 명예교수도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고 시인이 국내 행사에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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