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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키산맥 중턱에 장미를 키우는 농부가 있었다. 그는 날마다 휘파람을 불었다. ‘왜 장미 밭에서 휘파람을 부는 거지?’ 동네 사람들은 그 까닭이 궁금했다.

어느 날 이웃 사람이 물었다. “매일 휘파람을 부시는데, 그러면 장미가 잘 자라나요?” 농부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뒤 이웃의 소매를 잡고는 근처에 있는 자기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아내가 혼자 농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아내는 눈이 보이지 않아요. 제 휘파람 소리를 들어야 어디쯤 있는지 알거든요.”

흔히들 부부는 전생의 원수끼리 만난 것이라고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불교에서 부부란 자그마치 8000겁(劫)의 인연을 통해 맺어진 존재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한 변이 약 15㎞인 정육면체가 있다고 치자. 옛 서울 도성 안쪽 부피의 수만 배 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거기에 좁쌀보다 작은 겨자씨를 가득 담아놓고 백년에 하나씩 한강에 던져 다 없어지면 그게 1겁이다. 이런 인연을 무한 반복해야 비로소 부부로 짝을 이룰 자격이 생긴다. 지금 침대 위 당신 곁에 모로 누운 사람이 그런 영겁의 존재다. 매일 원수처럼 아옹다옹하지만 사실 부부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다.

황금만능시대를 맞아 부부의 가치가 자꾸 추락한다. 물질적 가치에 밀려난 뒷방신세가 요즘 부부의 위상이다. 국내 한 연구소가 50세 이상 중·고령층을 상대로 은퇴 후 행복한 노후를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을 조사했더니 남편은 돈보다 못한 존재였다고 한다. 아내의 경우엔 돈을 꼽은 사람이 26%였으나 남편을 택한 사람은 16%에 불과했다. 남편은 그래도 돈(22%)보다 아내(23%)를 꼽은 사람이 약간 많았다. 남녀 모두 가장 중요하게 여긴 노후 조건은 건강이었다. ‘노후에 배우자와 함께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서도 남녀 차이가 두드러졌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사람은 아내 쪽이 23%로 남편(7%)보다 세 배 이상 많았다.

남편들이여! 아내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행여 “내가 평생 누굴 위해 뼈 빠지게 돈을 벌었는데…” 하고 자책하지도 말자. 아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돈바람’이 아니지 않는가. 바로 ‘휘파람’이다. 남편이 불어주는 사랑의 세레나데에 눈먼 아내는 아직도 많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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