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정도전의 불교 비판을 비판한다’(고상현 지음, 푸른역사)는 불교 경전을 근거로 정도전의 비판을 “피상적이고 소략하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정도전의 불교 심성론에 대한 인식이 논리의 비일관성과 비약, 개념의 혼란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본다. 불교의 윤리관을 출가자와 재가자로 나누어 판단하지 않고, 출가자에만 초점을 맞췄다 등의 지적도 제기한다.
이 같은 오류는 정도전의 불교 비판이 “성리학의 안착을 위해 사상투쟁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정도전은 성리학을 개혁사상의 핵심으로 삼았고, 성리학적 질서의 정착을 위해 지배사상인 불교에 도전했다. 이런 점은 왜곡된 주장으로 이어졌다. 새왕조 건국이라는 사명감에 경도된 상태에서 불교를 바라봤기 때문에 “비속하고 자질구레한” 불교 비판을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도전의 사례를 분석하며 “오늘날 변화를 이끌어가는 개혁가들이 개혁의 정당성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더 넓은 안목으로 우리 사회의 역사와 문화, 사상에 기반을 둔 개혁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 현재의 종교계가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는 계기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거대한 종교 건축물 짓기, 종교인들의 재산 다툼, 성직자들의 호의호식, 성직 세습 등 당시(고려 말)와 달라진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유사한 문제들이 이슈로 쏟아지고 있다”고 꼬집는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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