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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風’에 혼나고도 달라진게 없는 여야
무책임·무능 벗어나야 공멸위기 면할 수 있어
3년 전 이맘때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의 뜻을 접었다. 대신 박원순 변호사 손을 들어줬다. 지지율 50% 후보가 5% 후보에게 양보한 것이다. 뜻밖이었다. 서로 후보를 하겠다고 물고 뜯는 정치판에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의 후보 단일화는 정치권을 들쑤셔 놓았다. 안 원장이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안철수의 ‘6일 정치’가 철옹성 같았던 박근혜 대세론을 뒤흔든 것이다. 한나라당에겐 충격이었다. 박 전 대표는 3년 반 동안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한나라당은 박 변호사에 맞서 이길 후보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민주당 처지는 더 딱했다. 명색이 제1야당이면서도 야권 후보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 민주당은 박 변호사를 입당시켜 후보 경선에 나서게 하려 했다. 박 변호사는 안 원장과의 단일화를 택했다. 민주당 후보가 되는 것보다 장외에 있는 안철수 개인의 지지를 얻는 게 야권 후보 자리를 차지하는 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우리나라 정치를 이끌어 온 양대 정당이었다. 하지만 안철수 돌풍을 등에 업은 시민후보에게 차례로 나가떨어졌다. 수권정당을 자부하는 민주당은 후보조차 내지 못하고 들러리 신세로 전락했다. 한나라당은 우여곡절 끝에 나경원 후보를 내세웠으나 박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양대 정당의 허약한 체질이 그대로 드러났다. 여야가 민심을 얻지 못해 자초한 일이었다. ‘정당의 위기’라고들 했다. “정당은 이제 끝났다”는 사형선고까지 나왔다.

3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게 없다. 지금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세월호 정국이 꽉 막혔다. 정치권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정쟁의 제물로 삼아 치킨게임을 벌이는 탓이다. 국회와 정당 기능이 올스톱되다시피 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정치 실종’ 상태다. 무책임한 여권과 무능하기 짝이 없는 야당의 합작품이다.

세월호 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해 온 청와대가 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야당과 유가족 요구를 일축했다. 여당에는 사실상 협상의 마지노선까지 정해줬다. 새누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민생법안을 조속히 처리하라고 당부도 했다. 여당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국회의장이 정기국회 전체 의사일정을 직권으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여야 대화는 더 어려워졌다.

원재연 논설위원
정국이 꼬인 데는 새정치민주연합 책임이 더 크다. 여당과의 세월호특별법 합의를 두 차례나 파기한 데 이어 비대위원장 영입 문제로 내홍에 빠지면서 난맥상을 드러냈다. 당 대표가 탈당을 거론하는 해괴한 일까지 벌어졌다. 자중지란에 빠져 제 몸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야당의 존재 의미까지 의심받는 형편이다. 민심을 외면하고 당내 권력투쟁에만 골몰한 결과다. 박영선 원내대표가 탈당 의사를 거둬들였지만 혼돈이 정리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염원이 안철수 바람을 일으켰다. 정파적 이익보다는 공익을 앞세우고, 대결 대신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정치를 펴달라는 바람이었다. 국민은 지금도 같은 덕목을 요구하고 있다. 여권과 야당이 진정성 있는 자세로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를 밝히고,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정치가 무기력증에 빠진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야당이 최악의 사태를 피할 길을 함께 찾아야 할 것이다. 여권은 형식논리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야당은 합리적 주장이 당의 중심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할 일이다. 그러지 못하면 정당의 위기를 넘어 정치가 공멸의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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