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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노른자위 땅의 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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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17 21:26:39 수정 : 2014-09-18 0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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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강의 도중 점심 값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치자. 어찌해야 할까. 고전적 해결책이 있다. 생생한 실험을 겸해 학생 지갑을 터는 수법이다. 2008년 미국 대선·총선에서 족집게 도사 노릇을 한 예측 전문가 네이트 실버도 ‘신호와 소음’에서 자신 있게 권한다.

해결책은 경매 실험이다. 항아리 속에 동전을 몇 개 넣고 학생들에게 입찰 가격을 제시하도록 한다. 승자는 당연히 최고가를 제시한 학생이다. 입찰가의 현금을 내놓고 항아리 속 동전을 독차지한다. 그러나 낙찰자는 십중팔구 손해를 봤다는 점을 뒤늦게 확인하게 마련이다. 교수에겐 점심 값이 남는 것이다. 실제 누차에 걸쳐 행해진 미 보스턴대 등의 실험도 그렇게 귀결됐다.

학생들이 겪은 경제현상은 어찌 정의될까. 바로 ‘승자의 저주’다. 이기고도 지게 되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이런 현상이 예외적인 게 아니라 일반적이라고 강조한다. 주류 경제학의 가정과 달리 현실의 경제 주체는 합리적 판단을 하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경험적 증거라는 주장도 곁들인다.

승자의 저주가 공론화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석유 자원을 다룬 1971년 논문을 통해서였다. 모두 기술자였던 3명의 논문 공저자는 석유 시추권을 겨냥한 경매 경쟁이 결국 해당 에너지기업에 손실이나 이익 저하를 초래했다는 실증적 결론을 끌어냈다. 제법 반향이 컸고 후속 연구도 이어졌다. 오늘날엔 시추권 경매만 그런 게 아니라고 다 인정한다. 출판 계약부터 프로야구선수 몸값 흥정, 기업 인수에 이르기까지 경쟁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미 시카고대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이렇게 단언할 정도다. “(계속) 입찰에 참가한다면 언젠가는 빈털터리가 될 것이다.”

서울 강남 한국전력 본사 부지의 새 주인이 오늘 결정된다.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로 통하는 축구장 12개 넓이의 땅이다. 어제 입찰 마감 결과 재계 쌍두마차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의 2파전으로 사실상 굳어졌다고 한다.

시중에 떠돈 추정 비용이 천문학적 수준이어서일까. 승자의 저주 경보음도 요란하다. 외려 이를 둘러싼 논란이 더 시끄러울 정도다. 어제 입찰가를 써낸 의사 결정권자들은 정화수를 떠놓고 손이 발이 되게 빌어야 할 것 같다. 제발 저주가 빗나가게 해달라고. 또 만일 경쟁사가 이길 경우엔 곱빼기 저주가 내리게 해달라고.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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