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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31〉 황홀한 노을 만난 바야이베
라로마나(La Romana)에서 바야이베(Bayahibe)까지는 30분 남짓 걸린다. 구아구아 버스를 타고 기다리니, 사람들을 다 채운 후에야 출발한다. 한참 숲을 헤치고 달렸다.

바야이베는 지도상으로 보면 남쪽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해변마을이다. 근처에 큰 국립공원이 있어서 울창한 숲을 지나야 바다에 다다른다. 깔끔하고 작은 마을에 들어서니 외국인이 많았다. 버스는 마을에 하나뿐인 정류장에만 멈춘다.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마을은 작다. 숙소를 찾아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넓은 마당의 작은 방갈로를 독채로 사용할 수 있는 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테라스에 의자가 있어 바다의 노을을 보면서 휴식하기 좋은 집이다. 건물을 올려서 상하좌우에 방을 들여 놓은 호텔과 달리 이곳은 각각의 방갈로가 독립돼 있어서 좋다. 편의시설은 호텔이 낫겠지만, 앞뜰에서 만나 이웃이 된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런 숙소가 나에겐 더 좋다.

현지어만 통하는 불편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건 큰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 옆집에 머물고 있는 여행자는 이탈리아인으로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내 말을 통역해 주었지만, 나는 천천히 스페인어로 현지인에게 말했다. 이탈리아 여행자는 놀라며 내가 스페인어를 잘 한다고 칭찬해 줬다.

이탈리아어는 스페인어와 비슷해서 대부분 유럽 사람들은 언어의 불편없이 여행을 하곤 한다. 그의 말로는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아도 절반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단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유럽인들은 여행하기 너무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내가 좋아하는 베네치아에서 살고 있는 그가 더 부러워졌다.

바야이베는 수상레저를 즐기려는 외국인에게 인기가 좋은 동네다. 해변은 작은 배와 요트들로 가득 차 있다. 요트는 왠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부의 상징처럼 느껴서인지 요트를 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며칠 후 그 요트를 타기 전까지는 요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신비한 문양이 새겨진 바닷가 바위.
바야이베의 구석구석까지 걸어 들어가 발자취를 남겼다. 낮에는 힘들어 지치다가도 그늘에서 바다 바람을 맞으면 또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솟는다. 목화나무를 따라가다 보니 작은 교회가 있었다. 지금은 아이들의 학교로 쓰이고 있다. 조용하길래 그 앞에 앉아 쉬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이곳이 좋았다. 갑자기 교회 종소리가 울리더니,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도 놀랐고, 아이들도 놀랐다.

그 놀람도 잠시, 인사를 하니 아이들이 몰려들어 “이름이 뭐냐”, “어디서 왔냐”, “이곳에서 뭐하냐”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그리곤 내 카메라를 발견한 순간 더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어, 나는 수없이 셔터를 누르고 화면 보여주기를 반복해야 했다. 아이들은 구름처럼 몰려왔다가 금세 사라졌다. 길 끝까지 가니,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한창 몸부림을 하고 있었다. 바위 위를 걸으며 발 아래를 보니, 내가 걷고 있는 곳이 마치 지구가 아닌 것만 같았다. 고대생물이 그대로 새겨진 것처럼 이 바위는 신기한 모양이다. 이곳에 오래 머물며 관찰을 더 하고 싶었으나, 강한 햇빛이 그늘로 이끌었다. 

바야이베 마을 앞바다에 펼쳐지는 화려한 노을.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노을이 한참 펼쳐지고 있었다. ‘붉은 노을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를 실감하며 어둠을 맞이했다. 마을 한쪽의 작은 장터에는 외국인들에게 팔 만한 물건을 들고 나온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액세서리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상인의 가판대에 놓여 있는 귀걸이에 눈길이 갔다. 귀걸이가 예뻤지만 그보다도 가판대를 꾸며 놓은 장식물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걸로 귀걸이를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숙소로 가져다 준단다. 내일이면 살던 동네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만 장사를 한다고 했다.

숙소를 알려주고 들어와서 테라스에서 쉬고 있었다. 돈을 미리 지불한 게 아니기 때문에 별로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 밤 열시쯤에 작은 대문밖으로 그녀와 어린 딸이 나를 불러 냈다. 나가 보니, 너무 예쁘게 포장을 해서 가져왔다. 봉투에는 글귀도 써 있고, 귀걸이도 예쁘게 만들어졌다. 단단한 씨앗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귀걸이는 신비한 색을 띠고 있다. 

지금은 학교로 사용되는 옛 교회 건물.
이 마을에서 재미난 점 또 하나는 술집이다. 따로 술집이 있는 건 아니고, 콜마도(슈퍼마켓 같은 유통업체)에서 의자를 놓고 마시는 게 전부다. 하지만 맥주 한 잔을 마시기 위해선 경쟁이 붙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주인을 부르고 또 불러야 한다. 덩치 큰 외국인에게 밀려났지만, ‘세뇰’이라고 부르면 모든 사람을 마다하고 나의 주문을 들어준다. 상대방을 낮춰 부르는 말도 많지만 존중하는 말도 많다. 특히 이런 곳에서는 콜마도의 주인을 높여 불러 주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존칭을 써주니, 내 주문을 먼저 들어준 건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마을을 배회해 보니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호객행위도 이뤄지고 있다. 별 흥미 없이 흘려듣다가, 의심가는 이야기가 있었다. 바야이베에서는 ‘사오나(Saona)’라는 무인도를 하루 코스로 여행하는 상품이 있다. 비싸기도 하고 별 관심이 없었는데, 사오나섬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며 절반 가격을 제시했다. 사오나섬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게 됐고, 가격도 마음에 들었다.

이틀 후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도 고민이 됐지만, 어차피 가 봐서 아니면 돌아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선불을 줘서 예약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아침 8시까지 바닷가로 나오라고만 했다. 그리고 그는 또 국립공원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허세를 부렸다. 원래는 가이드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인데, 자기 친구가 가이드증이 있으니 같이 가면 된다며 다소 억지스러운 제안을 했다. 안내소에 가서 물어보니, 가이드를 꼭 동반해야 하는 건 아니었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되는데, 걸어 다니려면 며칠이나 걸린단다. 그래서 자동차로 투어를 시켜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되는데, 그 친구는 오토바이로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했다. 점점 의심이 커져갔지만, 내일이 되기를 기다리며 잠이 들었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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