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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감정’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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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19 22:35:21 수정 : 2014-09-19 22: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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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합리 강조한 현대사회 감정 억압
진정한 내면 들여다봐야 ‘주체적 삶’
몇 해 전 우리 집 딸애가 집을 나간 적이 있다. 딸아이는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집을 나가기 전 휴대폰을 내가 빼앗았다는 이유로 베란다에서 떨어져 죽겠다고 나에게 협박했다. 떨어질 거면 떨어져 보라고 나는 큰 소리를 질렀다. 남편이 사색이 돼 있었다. “정말, 쟤,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흥, 떨어져 죽을 애면 떨어진다고 말도 안 해!”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 나도 겁이 났다.

혹 여러분 자녀가 지금 사춘기인가? 아마 그렇다면 여러분은 거의 정신병, 신경쇠약 직전일 것이다. 사춘기 아이의 감정은 끓어오르는 분화구처럼 기화점을 향해 폭발한다. 그래서인지 청소년 심리상담센터가 북새통을 이룬다. 정신클리닉, 심리상담, 마인드컨트롤 센터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고객들은 청소년만은 아닌 듯하다. 사춘기 아이와 함께 그 부모도 상담을 받고 있다. 심지어 라디오 건강 프로에서 정신과 의사가 나와 현대인들이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살펴봐야 하는가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감정, 그렇다. 감정이 문제다. 2013년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강신주의 ‘감정수업’이었다. 한때 ‘힐링’으로 내면의 상처를 다스리려던 현대인들이 ‘감정’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감정’ 관련 책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13년에 ‘감정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묵직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2쇄를 찍었다. ‘감정은 습관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2014년 최근 ‘감정’ 관련 출간된 책만 해도 ‘서른 살 감정공부’ ‘감정을 읽는 시간’ ‘감정 읽기’ ‘인간의 75가지 감정 표현법’ 등이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감정에 관심을 갖게 됐나. “넌, 너무 감정적이야”라는 말은 감정에 대한 부정적 함의를 담고 있다. 근대 합리주의가 도래한 이후에 이성은 철저하게 감정을 억압했다. 무시했다. 천시했다. 비합리적이라고 무시했던 감정을 현대인들은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왜, 무엇 때문에?

이성과 합리로 무장한 현대문명에서의 삶이란 결국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억압한 채 산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조직에서 ‘까라면 까야’ 한다. 죽도록 ‘삽질’하며 상사에게 아부해야 한다. 월급날에 목매며 수십 년을 살다 보면 내가 느끼는 기쁨이 진짜 내 기쁨인지 내가 느끼는 슬픔이 진짜 내 슬픔인지 알 수 없다. 어느 사이 내 감정이란 것이 너덜너덜한 넝마처럼 찢기고 갈겨 찾을 길은 있는지 의아스러워진다. 현대인들은 모두 ‘감정노동자’인 것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세월호 사건이 있었고 윤일병 사건이 있었다.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커다란 슬픔이 우리를 집어삼켰다. 슬픔은 울분이 되고 울분은 분노가 됐다. 감정의 쓰나미는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감정수업이란, 자신의 감정을 잘 다독이며 위로하라는 것이 아니다. 제 감정이 실제 무엇인지를 스스로 거리를 두고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것이 자신을 아는 길이고 그렇게 될 때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제 감정을 속이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 모른다. 포커페이스의 달인이 직장에서 성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사회는 어느 조직이든 ‘조폭문화’로 가득 차 있다. 서열체제와 상명하복의 시스템은 견고하기만 해 보인다. 그 억압된 현대인들이 이제야 제 감정을 되찾겠다고 감정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구석에 처박아 놓아 먼지투성이가 된 ‘감정’, ‘내 감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딱딱해진 감정을 말랑말랑하게 만들다 보면 건조한 정글 속에서의 삶도 촉촉한 윤기가 흐를 것이다. 이 가을, 높고 파란 하늘을 한없이 올려다보기, 시집을 사서 시 한 수 소리 내서 읽어보기,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를 지긋이 쳐다보기, 가을 음식, 레시피를 보고 만들어보기,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 별들 바라보기. 이번 가을에는 자신의 감정을 만나는 연습부터 천천히 해볼 일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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