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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한국 도예계… 흙의 무한 가능성에서 해답 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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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2 20:14:19 수정 : 2014-09-23 08: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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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흙과 50년 세월’ 1세대 도예가 신상호씨 흙을 만지고 씨름한 지 50년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도예계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땅 밑으로 더 가라앉은 느낌이다. 그럴수록 원점으로 돌아가 도예가 뭔가를 철저히 묻게 된다. 흙의 무한한 가능성에서 그 해답을 구하려 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도예가 신상호(67)씨의 일성이다.

가장 큰 요인은 중국이다. 개혁개방 이후 세계 도자시장은 중국의 충격파에 직격탄을 맞았다. “공산주의를 했어도 지난 1000년 세월 동안 가마에 불을 꺼트리지 않았다. 그 여력과 기술을 오늘까지 유지했다. 천혜의 자원과 넘쳐나는 저임금 기술력 앞에 세계는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다.” 

요즘도 주말이면 청계천 뒷골목 등을 뒤지고 다닌다는 신상호 작가. 그는 버려진 것들과 도자의 조합에서 고정관념을 넘어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실제로 그릇, 위생기, 타일 등 전 세계 생산의 80% 이상을 중국이 담당하고 있다. 서구 유명 도자회사들도 브랜드만 가지고 있지 중국에서 거의 제작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좋든 싫든 기존의 세계도자시장은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1980∼90년대엔 전국에 도예과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지금은 대전 이남의 대학에서 도예과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더 빠른 속도로 없어질 것이다. 졸업생들이 밥을 먹고 살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세계도예계의 성공모델로 꼽히는 1세대 도예가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현실 타개의 열쇠는 공예에서 디자인으로, 더 나아가 순수미술 영역으로의 확고한 자리매김이다. 

깨진 방탄유리와 도자가 결합된 작품. 갈기갈기 찟긴 시대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생존을 위해 변화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다.”

몇 해 전 그들 일본의 유명 도예잡지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10년 단위로 작품에 큰 변화를 보이면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비결에 대해서 집중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살아남기 위해서 변할 수밖에 없었다고 명쾌하게 답했다. 그것이 변화속에서도 성공 비결이었다.

“누구는 평생을 하나의 전형적인 작품 틀에 매달려 심화시킨다고들 하지만, 나는 내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시대정신에 충실하고 싶다.”

그는 이제 남들이 어떻게 말해도 괘념치 않는다. 눈치 볼 나이도 아니다. 진정성 있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홍익대 교수 정년을 5년 남기고 명예퇴직을 한 것도 하고 싶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버려진 유럽의 창틀과 도자가 조합된 작품. 미니멀한 현대미술 작품을 연상시킨다.
“퇴직 이후 지난 6년간 두문불출하며 살았다. 사회적 친구들과 거의 연을 끊고 바깥생활을 안 했다. ‘건방지다’는 비난부터 ‘똘아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작업에 빠져 사는 삶이 행복 그 자체였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대구미술관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28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갖는 초대전도 지난 6년의 결과물이다. 전시물만 언뜻 봐서는 신상호 작품전이라는 것을 쉽게 떠올리지 못할 정도다. 끊임없는 변화의 모색이다.

전시장 벽면에 기울어진 배 그림이 눈길을 끈다. 도조(구운 그림)작품이다. 그 앞엔 아프리카에서 가져 온 통나무 배가 놓여져 있다. 세월호를 풍자한 설치작품이다. 옆방엔 낡은 의자들이 엎어져 쌓여 있고 그 옆으론 사람 모양의 비석들이 서 있다. 죽어가고 있는 대학미술교육에 대한 경종을 담은 설치작품이다.

“세월호에서 수백명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전 국민은 그냥 바라만 봐야 했었다. 대학 교수 시절 침몰하고 있는 대학 미술교육을 방관만 하고 있었던 내 모습이 세월호와 중첩됐다.”

그는 교육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이실직고하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다. 핵심 키워드는 변화와 기득권 내려 놓기다.

“대학이나 사회나 압축성장의 결실을 독점하려고 기득권에만 충실(?)하려는 모습이다. 변화는 거부당하고 자연히 시대에 침몰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그는 대학이 학생을 유능한 학생으로 키우기보다 수능 서열로 학생을 모집해 학교를 유지하려는 ‘명문 기득권 장사’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은 장사가 아니다. 많은 대학들이 교육을 빙자한 장사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청년 실업시대에 최소한 학생들에게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그동안 도예는 미술에서도 서자 취급을 받았다. 순수미술의 엘리트주의와 폐쇄성에 기인한다.

“개인적인 응어리이기도 하지만 제자들에겐 더 이상 그리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 줘 더 이상 서자 취급 받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상 나의 뇌리를 맴돌았다.”

그는 흙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해결책이라 했다. 그가 꾸준히 공예와 디자인을 넘어 순수미술의 영역을 개척한 이유다.

“1300도의 불 속에서 구워지는 그림은 오일이나 아크릴 물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가능케 한다. 무명옷에 물감 번지는 느낌이야말로 흙과 불의 만남이 아니면 구현할 수 없다.”

그는 미국, 영국, 호주 등의 도예교과서 같은 책들에 소개될 정도로 세계도예계에선 이름이 알려진 작가다. 하지만 국제적 위상에 비해 국내에선 그만큼의 대접을 못 받고 있다. 푸대접에 가까울 정도다. 그도 인간인지라 때론 서글프고 외롭기까지 하다.

“그것마저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래도 인정받고 죽을 수 있다면 더 없는 행복일 것 같다.”

그는 작업에서 개념적으로만 흐르는 것을 경계한다. 개념은 작가의 작업을 글로 정리하거나 이론을 만드는 사람들의 몫으로 여긴다. 작가가 그 개념을 쫓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작가의 본질은 동물적 감각으로 느낌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머리를 쥐어짜고 하늘을 바라보며 고민하는 일은 공허한 일이다.”

그는 주말이면 새벽 5시에 청계천 뒷골목에 나타난다. 얼마 전까진 런던 뒷골목과 아프리카를 누비기도 했다. 쓰다가 버려진 것들을 모으기 위해서다.

“작가의 감각이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 영감을 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동안 쌓은 지식은 고정관념이 돼 버린다. ‘된다’와 ‘안 된다’로만 연결된다.”

그에게 버려진 것들은 그가 여태껏 쌓은 지식 같은 것이다. 도자와 버려진 것들의 이질적인 만남은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서게 한다.

목적을 위해 만든 것이 생명을 다해 버려졌지만 도자를 만나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났다. 깨진 방탄유리가 그렇고, 버려진 창틀이 그랬다.

“시대정신은 늘상 새로운 것이었다. 작가도 늘 작품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시대정신의 전위대였다.” 이화익 갤러리와 예화랑에서도 동시에 그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02)720-5114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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