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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사시미파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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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2 20:57:18 수정 : 2014-09-22 20: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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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현장에서 뛰던 시절, 김태촌과 만난 적이 있다. 1990년대 초반이었다. 영등포의 한 병원에 병문안을 온 김태촌은 말끔한 신사복 차림이었다. 몸매는 호리호리했고 눈매가 날카로웠다. 탤런트 최불암과 함께 온 것으로 기억된다. 최불암은 김태촌 같은 깡패를 잡아넣는 드라마 ‘수사반장’에 반장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둘이 어떤 관계였는지 모르겠지만 호형호제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이 찾은 환자는 유명인사도 아니고 조폭도 아니었다.

당시 세계일보에 기자가 쓴 사건 기사가 나갔다. “셋방 새색시를 구하다 칼에 찔려 집주인 중상. 방위 복무 중이던 아들도 함께 싸웠다”라는 내용이었다. 서울경찰청장이 방문해 격려했다. 이를 본 김태촌이 금일봉을 들고 “반성과 속죄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장한 일을 한 평범한 시민을 찾아 과거의 악행을 씻어내는 김태촌을 두고, 그것도 유명 탤런트와 같이 있는 그를 두고 누가 칼잡이 조폭이라고 보겠는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교회 단식원에서 신앙 간증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단순한 주먹의 세계를 뛰어넘는 위장술을 갖고 있었다.

해방 이후 자유당까지, 더 넓게 보면 공화당 시절까지 깡패들은 주먹으로 승부를 겨뤘다. 문학적 표현을 쓰자면 협객의 시대쯤 된다. 전설 같은 싸움꾼들의 얘기가 아직도 전해진다. 김태촌은 연장을 든 무리를 이끌고 등장했다. 맨주먹 대신 날이 서 있는 긴 회칼을 들고 활개쳤다. 경제가 살아나며 뒷골목 유흥가가 먹고살 만해지던 1970년대 후반이었다. 그의 암약으로 뒷골목은 잔인무도해졌다. 1980년대 룸살롱에서 상대 조직원을 사시미 칼로 난자한 서진룸살롱 사건, 낫을 휘둘러 피바람을 일으킨 인천 뉴송도호텔 사건과 직간접 연루됐다.

김태촌은 생전에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부심했다. 그가 종교인으로, 폐암 환자로 살면서 선행을 베푼 것은 다 이를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지적도 있다. 작년에 그는 세상을 떴지만 그의 계보를 잇는 조직은 살아 있었다. 엊그제 경찰이 “범서방파 일당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부두목과 조직원 61명을 잡았다고 한다. 사시미파의 종말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태촌이 지워진 그 빈자리를 이미 누군가가 채우고 있을 터. 회칼 대신 아이패드를 든 기업형 조폭이 뒷골목 대신 번듯한 사무실에서 만면에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날고 기는 조폭 앞에서 경찰이 뒷북 치고 축배 드는 꼴은 아닌지.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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