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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안게임] 두바퀴로 27년 달려온 당신이 진정한 챔피언

관련이슈 2014 인천아시안게임 , 2014 인천아시안게임-화제의 선수

입력 : 2014-09-23 19:07:56 수정 : 2014-09-23 23: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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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맏형 조호성 ‘마지막 레이스’ ‘이젠 멈춰섰다. 한평생 달렸는데…’

한국 사이클의 대들보 조호성(41·서울시청)이 27년간 타온 사이클에서 내려왔다.

조호성은 23일 인천국제벨로드롬에서 열린 옴니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젠 안장 위에서 힘차게 페달을 밟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체력 소모가 엄청난 사이클 종목에서 스무 살이나 어린 후배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지도자의 길을 걸을 예정이다. 한때 경륜 선수로 전향하기도 했지만 이번까지 아시안게임에 무려 5번이나 나섰다. 사이클선수로는 ‘환갑’이라 불릴 정도인 불혹의 레이서이다.

옴니엄은 플라잉 1랩, 1㎞ 독주, 4㎞ 개인추발, 15㎞ 스크래치, 제외경기, 40㎞ 포인트레이스 등 단·장거리 6종목을 합산해 순위를 정한다. 포인트 레이스만해도 333.33m 트랙을 무려 120바퀴나 돈다. 시속 47.916km의 폭풍질주다. 조호성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관중들은 “장하다 조호성”을 연호하며 마지막 길에 힘찬 응원을 보냈다.

경기를 마친 뒤 조호성은 경기장을 찾은 뮤지컬 배우 출신의 부인 황원경씨와 아들 딸을 끌어안았다. 검은색 슈트와 검은색 해트 차림의 황씨는 거친 숨을 몰아쉬는 ‘자랑스러운 남편’의 빰을 비비며 영광스러운 퇴장을 축하했다. 조호성이 앞만 보고 페달을 밟은 원동력은 가족의 힘이었다. 동료 선수들로부터도 격려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가벼울 리 없었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때부터 태극마크를 달아온 그는 “사이클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인천대회에 출전해 후회가 없다. 올림픽에서 후배들이 못 이룬 꿈을 이루어주길 바란다”며 홀연히 경기장을 떠났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30여개나 딴 조호성은 2012 런던올림픽을 마치고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가 다시 페달을 밟았다. 체력과 자신감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로 은퇴를 미뤘다. 최고의 성적을 거둬 사이클에 관심을 두게 만들고 싶었던 게 노병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경기도 부천 출신인 그는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인천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번 한국선수단 가운데 두 번째 최고령임에도 녹슬지 않은 실력과 연륜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조호성은 “인천대회에 출전해 개인적으로 영광이지만 후배들이 나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 애석했다”고 말했다.

한국 사이클이 세계 사이클의 중심에 서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게 인생 2막을 시작하는 그의 목표다. 한국 사이클은 올림픽에서 아직 노메달이다. 그가 2000 시드니올림픽 40㎞ 포인트레이스에서 20번째 바퀴까지 공동 선두를 달리다가 4위를 기록한 게 역대 올림픽에서 최고 성적이다. 조호성은 “올림픽 메달 직전에 번번이 주저앉은 게 가장 아쉬웠다”면서 “이젠 올림픽 메달 따는 방법을 전수해 대리 만족하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인천=박병헌 선임기자 bonanza7@segye.com

■ 조호성은…

▲출생 1974년 6월 경기 부천 

▲체격 175cm, 72kg ▲소속 서울시청 

▲주요 경력

●19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

●1998 방콕아시안게임 금

●2000 시드니올림픽 4위 

●2002 부산아시안게임 2관왕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금

●2013 아시아선수권대회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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