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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미륵신앙의 성지' 김제 모악산 금산사

입력 : 2014-09-25 21:59:53 수정 : 2014-09-26 22: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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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사상가 정여립·녹두장군 전봉준 등
새 이상세계 꿈꾼 이들이 영감을 받은 곳
미륵불은 불가에서 먼 훗날 중생들을 구원하기로 예정돼 있는 미래의 부처다. 미륵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후 자그만치 56억7000만년이 흐른 후 도솔천을 건너 이 사바세계에 홀연히 출현한다. 세상에 와서는 용화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돼 세 번의 설법으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해 준다고 불교에서는 말한다.

미륵불이 도래하는 미래 세상은 고통 없는 낙원이다. 그래서 미륵불에는 현실의 질곡에서 신음하는 이들이 닿고자 하는 이상세계의 꿈이 담겨 있다. 

미륵신앙에는 현실의 질곡에서 신음하는 이들이 닿고자 하는 이상세계의 꿈이 담겨 있다. 전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의 미륵전은 미륵신앙의 성지로 추앙받는 곳이다. 금산사는 가을 여행지로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밟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전북 김제시 모악산의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성지로 불린다. 백제 법왕 원년(599)에 임금의 복을 비는 사찰로 처음 지어진 금산사는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대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때 진표율사는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여 미륵전에 모셨고, 법당 남쪽 벽에는 미륵보살이 자기에게 계법을 주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금산사에는 대웅전이 없고 미륵전에 있는 미륵불이 주불이다. 그때부터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으로 추앙받게 된다. 높이 11.8m에 달하는 거대한 미륵보살을 모신 미륵전도 귀중한 불교 문화 유산으로 대접받는다. 우리 땅에서 유일한 3층 불교 건축물로, 국보 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미륵신앙의 결정체인 금산사 미륵불(가운데)
미래의 구원을 약속했던 미륵신앙은 우리 역사 속에서 사회변혁운동, 혁명사상과 결부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918)다. 말년에는 폭정을 일삼으며 비참한 최후를 마쳤지만, 살아있는 미륵을 자처한 궁예는 한때 대단한 지지세를 형성했다.

미륵신앙의 성지인 금산사 일대에도 정여립, 전봉준, 강증산 등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혁명가와 신흥종교 창시자들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모악산 입구의 금평저수지는 ‘오리알터’로도 불린다. 오리알터는 ‘올(來) 터’가 변해서 된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오는가. 바로 미륵부처다. 금산사에서 발현한 미륵사상이 이들이 혁명 정신을 잉태하는 데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게 이곳 사람들의 설명이다.

금산사 2층 누각인 보해루 아래 서면 대적광전의 전경이 액자에 든 그림처럼 펼쳐진다.
모악산 바로 옆 제비산에는 조선 중기 사상가인 정여립(1546∼1589)의 생거지(생활했던 집터)가 남아 있다. 정여립은 이곳에서 1000일 기도를 하며 용마를 얻었다고 한다. 정여립은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처가가 김제였다. 조선 선조 때 1000여명의 동인이 몰살당한 기축옥사의 발단이 된 게 이른바 ‘정여립 모반 사건’이다. 당시 정여립은 ‘대동계’를 조직해 무술 훈련을 하며 세력을 키웠다는 게 그를 몰아세운 서인들의 주장이다. 특히 정여립은 ‘천하는 공공의 물건(天下公物)이며,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랴(何事非君)’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록은 그를 불온하고 위험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지만, 후대의 일부 사가들은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보다 50년 앞선 세계 최초의 ‘공화정주의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녹두장군 전봉준(18545∼1895)도 오리알터 아래 감곡 황새마을에서 유년 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훗날 그의 오른팔이 됐던 동학의 금구접주 김덕명과 태인접주 손화중도 바로 그 시절에 사귄 동무들이다. 전봉준은 이곳에서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꿈꿨다.

갑오농민전쟁 실패 후 혼란기에 민중을 무서운 속도로 휘어잡은 증산교의 창시자 강증산(강일산·1871∼1909)은 금산사 미륵불을 공개적으로 차용했다. 강증산은 금산사 반대편의 대원사에서 49일 동안 기도한 끝에 도를 깨달았고, 오리알터 부근 구릿골 약방에서 도를 편다. 그래서 모악산은 증산교의 성지가 된다. 특히 강증산은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으면 금산사 미륵전으로 오라”는 유언을 남긴다.

금산사 주변에 만개한 붉은 꽃무릇.
지금 금산사는 가을의 정취로 가득하다. 만개한 꽃무릇이 절집 주위를 붉게 물들이고 있고, 화단의 국화도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금산사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은 미륵전이다. 미륵불 앞에 서서 작금의 나라 사정을 되돌아봤다. 정체 모를 종교와 무책임한 기업에서 비롯된 커다란 우환으로 이 나라는 수개월째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륵불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라도 올리고 싶을 정도로 무겁고 답답한 심정이다.

김제=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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