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는 ‘심청전’을 재구성, 현대사회의 모습을 풍자한다. |
‘심청이는…’은 풍자와 해학을 통해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가운데 47명이나 되는 여성들의 ‘인신매매’ 현장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들은 모두 심청이처럼 물속에 몸을 던지고 만다. 게다가 으레 선신(善神)이어야 할 것 같은 용왕이 그런 행위를 방관하거나 심지어 조장하는 등 부조리한 물신주의 사회를 절망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실 심청의 젊디 젊은 목숨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가는 것은 인신매매나 다름없으니 설득력 있는 각색이다.
‘심청전’은 안숙선 명창이 열연한 창극에서 절절하게 느낄 수 있듯이 아버지와 딸의 지극한 사랑을 통해 감동을 전하는 텍스트임은 분명하다. 심청이처럼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딸들도 있다. 그러나 문학에서도 그러하듯 무대에서도 다양한 버전으로 재해석되어 공연되어 왔다. 예를 들어 김승희의 시 ‘배꼽을 위한 연가5’에서 화자는 도저히 심청이처럼은 못하겠다며 점자책을 사오고,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에서는 봉사 아버지를 버리고 눈이 맞은 도련님과 야반도주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딸내미들의 개인적이거나 이기적인 모습이 관객들에게 더 현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심청의 이야기는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는 일종의 기괴한 잔혹 동화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때 심봉사와 심청이 각 세대를 상징한다고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더욱 어둡게 다가오지 않는가.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심청’의 모티프가 시대를 불문하고 감동을 주는 것은 심청이 죽음과 재생의 통과의례를 통해 구원을 알리는 여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연극 ‘심청이는…’도 희생제의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심청이는 애초에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버렸지만, 이번에는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이는 심청이를 두 번 죽이는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인 동시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심청이의 두 번째 희생으로 사회가 구원이 되었는가?” 묻는다면…, 결말은 극 속에 있지 않다. 연극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은 대답을 알려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것에 있지 않던가.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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