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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칼럼] 차 한잔과 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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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8 19:18:57 수정 : 2014-09-28 19: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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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낭만이 있어 더없이 정겨워
커피와 함께 하는 인문학은 어떨까
무엇과 서로 잘 어울리는 음료가 있다. 술도 마시는 거니까 음료라고 본다면 술은 노래와 잘 어울린다. 흥겨우면 흥겨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술에 노래가 따른다. 아마 권주가라는 것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이순원 소설가
차 한잔이 놓여 있는 풍경은 대화와 잘 어울린다. 물론 술로도 대화가 가능하겠지만 술의 대화는 그 속에 왠지 모임의 단체성과 의기투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듯하다. 함께 얼굴을 맞대고 조용조용 이야기를 하며 의견을 나누고 그리고 대화의 내용을 공감하는 자리에 차 한잔이 놓여 있으면 그 풍경도 지극히 아름답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인이 하루에 한 잔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하루가 온전히 지나가지 않는 듯 여겨지는 커피 역시 그런 차의 한 종류이다. 주변 나라들 가운데 정말 우리나라처럼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가 있을까 싶다. 중국과 일본도 으레 잎차를 우려 마시지 커피는 그다지 마시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 전통의 숭늉 뒷맛과 커피의 쓴맛이 서로 닮은 듯도 하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음료 가운데 술이 노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면 커피는 다른 차들 가운데 으뜸으로 낭만과 문학과 사색과 아주 잘 어울려 보인다. 이제 또 한 번의 계절이 바뀌며 찬바람이 불고 매년 신춘문예 응모철이 시작되면, 그래서 작품 심사를 나가게 되면 응모작품 속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의 장면 가운데 술보다 더 많이 마주치는 것이 커피에 대한 이야기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다음 집안 정리를 대충 끝낸 주부가 햇빛 드는 창가에 한 잔의 커피를 들고 앉아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또 한 권의 책을 읽으며 귓속에 흐르는 선율 속에 옛일을 떠올리거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런 풍경이 너무 상투적이어서 이렇게 쓰지 말라고 해도 그것 또한 꾸미고 말고 할 것 없는 일상 속의 한 모습이다. 이렇게 커피는 어쩔 수 없이 우리 추억과 함께하고 음악과 함께하고 문학과 함께한다.

물론 다른 음료에도 그런 것이 없지 않겠지만 커피에는 커피와 얽힌 그 사람만의 독특한 추억이 있다. 나는 지금도 커피의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스무 살 무렵 서울에서 만난 내 고향의 여자 친구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과 같이 봉지커피도 없던 시절이었고, 다방에서 마시든 집에서 마시든 누구랄 것도 없이 설탕을 듬뿍 넣어 여러 번 휘저어 마시던 시절이었다. 그때 중학교만 마치고 나보다 몇 년 일찍 서울에 올라와 구로 수출자유공단에 있는 방직공장에 근무하던 그녀는 나와 커피를 마시는 사람 가운데 처음으로 설탕도 크림도 넣지 않고 맨 커피를 조금도 쓰다는 기색 없이 마셨다.

그 모습을 조금은 낯설게 바라보자 고향의 여자친구는 “대학에 다니는 너희들이야 멋으로 낭만으로 마시겠지만 나는 열일곱 살 때 서울에 올라왔을 때부터 한밤중에 방직기 앞에 앉아 공장 안에 주전자 가득 이걸 타놓고 여럿이 그냥 졸음을 쫓기 위해 약처럼 마신다”고 했다. 그리고 후일 작가가 되어 나는 이 친구의 커피 이야기를 썼다.

내 고향 강릉에서는 매년 10월 초 커피 축제가 열린다. 한국의 커피 명인들이 왜 동쪽으로 모두 가서 모였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커피 한 잔의 새로운 맛을 찾아 늦은 저녁 자동차를 서울에서 몰고 대관령을 넘는 커피 마니아를 만난 적이 있다. 커피에 대한 그들의 순정한 기호는 그것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다뿐이지 이것이 바로 사랑이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추억하고 마시는 문화로서만의 커피축제가 아니라 바다와 함께 하는 강릉항 커피거리에서 커피와 함께 하는 백일장대회 같은 것은 어떨까? 그곳의 많고 많은 카페 곳곳에 커피 잘 내리고 맛있게 내리는 법의 강좌만이 아니라 커피와 함께 하는 여러 형태의 인문학 강좌, 혹은 생활 속의 문화강좌는 어떨까. 커피는 어느새 우리 국민이 가장 즐기는 기호식품이 되었다. 이것이 우리 삶속에 보다 의미 있게 진한 향기를 발했으면 좋겠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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