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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주인의 학문, 노예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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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9 22:06:55 수정 : 2014-09-29 22: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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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역사가 제대로 서야 선진국
종합적 시각 갖고 인문학 접근을
며칠 전 인문학자의 소모임이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나라의 혼란스러움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구동성으로 정치를 탓했다. 그러다가 평소에 하는 버릇대로 또 최고통치자의 무능에 화살을 쏘아붙이는 말들로 책임 회피를 하는 통과의례를 거쳤다. 말하자면 희생양을 만들어서 자신의 죄과 책임을 모면하고자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개중에 바른 소리를 잘하는 한 명이 흘러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게 다 우리가 책임을 못한 탓이지. 인문학자의 책임이라는 말이야.” 인문학자의 자책론이 나오자 분위기는 잠시 숙연해졌다. 기업들이 세계경제의 최전선에서 무역전쟁을 하여 그나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들어가게 했는데 그동안 학자들이 한 것은 무엇이냐는 반성론이 일었다.

그렇다. 국민소득이 아무리 올라가고 국부가 쌓여도 나라의 철학과 역사가 제대로 서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재화가 사회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말이었다. 말하자면 물질의 풍요에 걸맞은 철학과 인문학이 병행되어야 재화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고, 주인정신을 바탕으로 개인과 집단이 정체성을 갖게 되고 민족적 자신감이나 개인의 자부심이 형성된다는 주장이었다.

한국의 인문학이 오늘의 궁지에 몰린 것은 일제 때 도입된 실증주의, 특히 ‘실증사학’과 서양과학의 영향으로 근대에 도입된 ‘전공(專功)’ 운운하는 버릇 때문이다. 예로부터 문사철(文史哲)이 하나였던 동양적 전통은 간 곳이 없고, 오늘날 인문학은 조각조각나 있다.

‘한국의 인문학을 주인의 학문이냐, 노예의 학문이냐’라고 따질 때 노예의 학문에 가깝다. 물론 부분적으로 주인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분야도 있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노예 쪽에 가깝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한국의 인문학이 노예의 편에 있는 까닭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체로 자신이 노예인 줄 모르는 데에 있다. 노예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으니, 즉 자신이 노예인 줄 모르고 있으니 노예를 벗어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일제는 조선의 식민화를 위해 ‘식민사관’부터 수립하고, 조선 침략에 나섰다. 그러한 식민사관을 과학적인 양 보이게 하기 위해 실증사학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실증사학의 주 내용은 조선은 고대에서부터 식민지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중국 한나라가 평양 일대에 설치했다고 하는 한(漢)사군이 그 역사적 증거이고, 일본 야마토정권이 한반도 남부 가야지방에 설치했다고 하는 임나일본부가 그 증거라는 것이다.

한사군의 위치를 두고 평양 대동강 일대인지, 만주 요하일대인지를 두고 학계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고 하는 한사군의 중심지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고, 나머지 군들도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고 하는 주장은 일본학자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가 만든 ‘낙랑군 수성현=황해도 수안’설을 따르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처하기 위해서 정부가 세운 기구인 동북아역사재단이 도리어 이를 수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대만대 총장을 지낸 푸스녠(傅斯年)은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이라는 역사서에서 일찍이 고조선과 숙신(肅愼)을 같은 나라라고 함으로써 고조선이 중국 산둥반도에 있었던 제(齊)나라의 동북쪽에 있었던 제국이었다고 주장했다. 한사군 한반도설은 이것으로도 깰 수 있다.

한·중·일 삼국은 현재 역사전쟁 중인데 한국학자들의 나태로 인해 작금의 상황은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샌드위치가 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일제 식민사관이나 동북공정은 결국 같은 제국주의이다. 한사군의 위치 비정과 함께 고구려사와 발해사 연구를 심화시키는 것이 한국 역사학계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임나일본부는 고대에 가야로부터 식민지를 당한 일본이 도리어 본국을 지배했다고 하는 억측전도의 주장이다. 말하자면 4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간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로 경영했다는 학설이다.

컬럼비아 대학 개리 레디어드(Gari Ledyard) 교수는 임나일본부의 실체를 정확하게 기술한 바 있다. 이 학설에 따르면 가야는 바다 건너 일본을 정벌하고 369년부터 505년까지 100년 이상 일본의 왕위를 계승했는데 이 가야를 지배한 것은 부여족이었다. 부여족들은 일본을 정벌하러 떠나기 전인 360년경 부산 부근을 일종의 기지로서 활용한 것이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일본의 지배층이 된 부여족이 부산·경남일대에 일종의 분실황가로 남겨둔 세력이 임나일본부이고, 일본 지배층은 가야의 귀족층과 국제결혼을 하는 등 빈번한 교류를 했다. 일본의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는 기본적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의 시각’에서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그래서 은연 중에 한반도를 ‘고향의 나라’로 보고 있지만, 이것을 뒤집으면 정한론(征韓論)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시각은 일제 때 성립된 식민사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니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연구와 주장을 해야 학자로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데 새로운 자료는 없으니 종래 주장을 확대해석하여 마치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거나 말장난을 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학은 ‘전공’의 장벽으로 인해서 종합적인 시각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이는 비단 역사학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철학과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문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포괄적인 지식, 교양적·상식적 지식도 없이 자신의 전공에만 매달리는 풍토는 전공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을 망치고 있으며, 인문학을 ‘사대적 노예의 학문’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학자들은 ‘제 전공이 아니라서’라고 말하면 모든 책임으로부터 면제되는 줄 안다. 한국의 인문학이 주인의 학이 되느냐, 노예의 학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있다. 남의 나라의 학설을 그대로 수용만 한다면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식민사학, 식민국어학, 식민국문학, 식민철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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