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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41개월 남은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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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29 22:12:43 수정 : 2014-09-30 01: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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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9개월 만에 전국이 전장터로
희망의 시대 열겠다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혁신이 정가(政街)의 보도(寶刀)가 됐다. 여야가 또 혁신위를 꾸렸다. 완전히 바꾸겠다며 뜯어내고 부순다고 야단법석을 떤 게 엊그제 같은데 혁신 좌판을 다시 깔았다. 새로 나온 물건이라도 있을까 기웃거리는 호갱님들이 없지 않겠으나 하는 짓을 보니 보나 마나다. 지난번에 팔다 남은 상품을 먼지 털어 내고 포장만 슬쩍 바꿔 다시 올려놓을 태세다. 국회의원 불체포를 비롯한 특권 내려놓기 쇄신안, 완전국민경선제(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비례대표 공천 방식 등등. 순진한 고객들을 사은품으로 현혹하며 시세 차익이나 챙기고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떴다방과 다를 게 없다.

떴다방 천막에 붙은 간판 하나는 ‘보수혁신특별위원회’, 또 하나는 ‘혁신실천위원회’다. 야당이야 뭘 해도 안 되는 콩가루 집안이니 혁신이 아니라 고사를 지낸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고사뿐이겠는가, 야당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것도 해야 할 판이다. 아무 일 안 해도, 죽을 쒀도 탄탄대로 잘나가는 여당이 뜬금없이 혁신 운운하니 눈길이 간다. 혁신 앞에 ‘보수’를 붙였다. 혁신이면 그냥 혁신이지 굳이 보수혁신·진보혁신을 구분한 발상이 궁금하다. 이 세상에 없는 혁신을 하려는가 싶어 솔깃하기도 하다.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은 ‘국민이 바라는 정치’로 바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 듣기는 좋은데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실체를 아는 바가 없다.

새누리당 혁신의 원조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2004년 이회창 후보의 대선 2연패와 차떼기 불법대선자금 모금 사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역풍을 맞고 좌초된 한나라당호를 구한 건 박근혜였다. 그해 4월15일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대표로 취임해 여의도 중앙당사를 떠나 천막당사 생활을 선언한 뒤 인고의 세월을 필마단기로 헤쳐 나갔다. 한나라당은 예상을 깨고 50석도 힘들다는 총선에서 121석을 얻었다. 죽어가던 한나라당은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지난 대선 때 국민에게 던진 메시지도 변화와 혁신이었다. 경제민주화·복지 정책, 정치 개혁안을 담은 ‘국민행복’ 공약이 유권자를 파고들었다. 문재인 후보를 무력화하는 무기가 됐다.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 외에 ‘혁신의 달인’이란 평가가 그리 어색할 것도 없었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19개월이 지났다. 나라 전체가 전쟁터다. 가계부담 덜기, 국가책임 보육,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 경제민주화, 대탕평 인사, 국민 대통합, 검찰 개혁 같은 수두룩한 대국민 약속의 번복·후퇴 논쟁으로 국론이 사분오열돼 있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 운영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약속 위반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려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 구멍가게식 인사 검증, 얼토당토않은 낙하산 인사, 꼼수 증세, 17초짜리 대독 사과, 그리고 세월호 정국에서 보여주고 있는 경직성과 완고함까지, 정부의 도덕성과 능력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대통령의 임기는 41개월이 남아 있다. “아직도 41개월이나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제 41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권은 “이제 ∼밖에 남지 않았다”고 여기는 세력이 더 많아질 때 흔들리기 시작한다. 새누리당은 41개월밖에 남지 않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불쑥 꺼내든 혁신 카드는 청와대와의 차별화를 겨냥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보수혁신위 임명장 수여식에서 “보수 우파가 이대로는 정권 재창출의 보장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청와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문제점을 에둘러 지적한 인상이 짙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제동을 걸 만큼 거수기 노릇이나 하던 예전의 여당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임기가 아직도 41개월이나 남아 있다. 공약집 ‘세상을 바꾸는 약속 책임 있는 변화’를 흔들던 대선 후보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공자도 책을 맸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주역(周易)을 읽었다. “희망의 새시대를 열겠다”고 했던 취임사를 읽고 또 읽어야 한다. 박 대통령에게 최고의 혁신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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