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완벽’에 대한 헛된 실체 들여다보기

입력 : 2014-09-30 20:12:28 수정 : 2014-10-01 02:17:3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이불 작가 대형 설치 작품전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설치 작품으로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불(50) 작가의 대형 설치 작품 2점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내걸렸다.

설치작품 ‘태양의 도시 II’는 길이 33m, 폭 18m, 높이 7m의 대형 전시실 벽면과 바닥을 거울로 뒤덮었다. 수많은 거울 조각이 전구를 만나 만들어 내는 반사와 굴절이 무한 공간을 연출한다. 

안개속에 부유하고 있는 듯한 설치작품 ‘새벽의 노래 III’. 거대담론의 망령들이 여전히 어른거리고 있는 우리 시대를 은유하고 있다.
관람객은 공간 경계의 상실과 착각 속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경외도 경험하게 된다. 고요함 속에서 반사광이 가득한 공간은 실상 매우 정적이다. 그런데 바닥의 파편들과 그 이미지가 거울에 비쳐 분절되면서 엄청난 절규를 쏟아내는 듯하다. 무수한 거울 파편들의 선이 갖는 불완전한 움직임과 흐름은 거대한 평안 아래 묻힌 외침들을 상기시킨다. 작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철학자이자 공상적 공산주의자인 톰마소 캄파넬라(Tommaso Campanella)의 저서 ‘태양의 도시(The City of the Sun)’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토피아론의 고전으로 이상도시를 다루고 있다.

또 다른 작품인 ‘새벽의 노래 III’는 격정적인 밤을 함께 보낸 연인을 새벽에 떠나보내며 부르는 독일 노래 ‘오바드(aubade)’의 개념을 담고 있다. 독일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의 ‘새로운 법령을 위한 기념비’(1919)와 20세기 초 힌덴부르크 비행선 등 모더니즘 상징물들로부터 시각적 영감을 받아 재해석했다. 점멸하는 LED 조명들과 전시실 전체를 주기적으로 분사되어 채웠다 사라지는 연기(안개)가 시각적 효과를 더한다. 수직의 탑과 공간에 스며든 빛과 안개는 드러냄과 사라짐을 통해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삶의 아름다움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필멸성도 성찰케 해준다.

작가는 긍극적으로 인류의 자유와 해방을 목표로 한 근대 기획의 모든 서사들을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으로 보고 이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완벽’에 대한 언급이다. 헛된 열망과 그 적나라한 실체를 마주하게 함으로써 어쩌면 외면하고자 하는 현실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작가는 삶과 죽음, 추와 미, 세속과 신성, 실재와 꿈이 무수히 교차하는 현실 속으로 차갑고도 뜨겁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토피아에 대한 집단적 열망과 실패들을 설치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셈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거대 담론, 즉 메타서사가 불가능하다고 본 철학자 리오타르의 사고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작가는 모더니즘의 이상주의가 실패했음에도 여전히 개인들의 의식과 일상에 등장하는 모던 망령들에 대해 관객들이 숙고하기를 바란다.

이번 전시는 현대자동차가 10년 동안 해마다 12억원을 지원해 중견 작가의 신작을 소개하도록 한 미술지원사업으로 이뤄졌다. 내년 3월 1일까지. (02)3701-9500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