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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맥' 경화… 한국 경제 유동성 함정 가시화

입력 : 2014-10-01 20:48:45 수정 : 2014-10-01 20: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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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선 자본금 11배 쌓아둬
넘치는 돈 투자·소비 연결안돼
통상 경기가 허약할 때 금리인하는 자연스러운 처방이다. 그러나 만병통치약일 수 없다. 최근 “통화정책만으로는 성장세 회복에 한계가 있다”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반복되는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경제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있다면 틀린 처방이 될 수도 있다. 목표로 삼았던 소비와 투자의 진작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구조조정 지연이나 자산거품과 같은 부정적 효과만 두드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인하, 재정지출 확대로 시장에 유동성(돈)을 주입해도 기업의 생산과 투자, 가계 소비로 연결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한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이지만 징후는 적잖다. 통화승수는 일례다. 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7∼2009년 25배 안팎에서 등락하던 통화승수는 2009년 7월 이후 하락세를 지속해 지난 6월 19.7배로 떨어졌다. 통화승수는 한은이 본원통화 1원을 공급했을 때 이 돈의 몇 배에 달하는 통화를 창출하였는가를 나타내주는 지표로, 돈의 총량을 의미하는 통화량(M2)을 본원통화로 나눈 수치다. M2엔 현금과 결제성예금, 만기 2년 미만의 정기예·적금 등이 포함된다.

통화승수 하락이 곧 유동성 함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김수영 한은 금융시장팀 과장은 “통화정책이 통화량 중심인 과거에는 통화승수의 하락을 ‘돈맥경화’로 해석할 수도 있었지만 금리 중심 체제인 현재는 적합하지 않은 해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면 결과적으로 통화승수가 하락하는 흐름을 보일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의 넘쳐나는 유동성도 징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 기업의 6월 말 기준 유보율은 1092.9%에 달한다. 자본금의 11배나 되는 돈을 투자하지 않고 쌓아놓는 기업들에 금리인하는 투자유인의 ‘당근’이 될 리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유동성 함정 우려가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지난해 봄 기준금리 인하 압박이 커질 당시부터 유동성 함정을 이유로 금리인하에 부정적이었다. 지난 8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하했을 당시에도 유일하게 ‘동결’을 주장한 문우식 금통위원이 유동성 함정을 거론했다. 8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문 위원은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는 유동성 함정 등으로 인해 금리인하의 효과가 크게 제약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같은 이유로 “금리인하가 기업들의 이익만 높이고 투자확대를 유도하지 못한 채 심리적 효과 이상을 거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경기부양 수단을 총동원하려는 ‘최경환노믹스’ 영향으로 시장에 추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은 적잖다. KDB대우증권은 한은 금통위가 15일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것으로 예상하는 등 연내 추가 인하 예상이 꼬리를 문다. 무엇보다 한은 금통위의 기류에서도 추가 인하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럴수록 금리인하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유동성 함정 징후들도 점점 더 부각될 전망이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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