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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그때 그 극장들은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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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01 23:35:20 수정 : 2014-10-02 04: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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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원스’. 미국 브로드웨이와 함께 세계 뮤지컬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꽤 히트한 같은 제목의 아일랜드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작품으로, 2012년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상과 연출상 등 8개 부문을 휩쓸었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데다 한국에서도 곧 라이선스 버전으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어서 더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최근 취재차 영국 런던에 들렀을 때 시내 허름한 골목 뒤편의 극장에서 ‘원스’를 공연하는 극장을 우연히 만났다. 협소한 골목길 한쪽에 조그맣게 자리 잡은 오래된 건물이었고, 입구도 작고 보잘것없었다. 1970∼80년대 한국의 극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원스’라는 유명 작품을 공연하지 않았다면, 뮤지컬을 하는 곳으로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이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원스’를 절찬리에 상연하고 있는 피닉스 극장이었다.

이후 런던에 머물면서 웨스트엔드에서 더 많은 뮤지컬 공연장들을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 극장들은 하나같이 피닉스 극장 같았다. 고풍스럽지만 작고 낡았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것 같은 그런 공간에서 세계적인 히트 뮤지컬들이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이뿐 아니라, 대도시 골목 곳곳에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을 것이 분명한 원숙하면서도 기품 있어 보이는 극장들에서 지금도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문득 한국이라면 이런 작고 낡은 극장무대에서 대형 뮤지컬이 공연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신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아마도 힘들 것이다. 낡은 것을 거부하고 첨단만 숭상하는 한국에서 돈을 내고 극장을 찾는 관객도, 관객을 끌어모으는 제작자도 이런 극장을 찾는 것을 꺼릴 것이다. 그게 고풍이 배어 있는 문화의 향취보다는 편리함과 화려함을 더 큰 가치로 치는 한국의 모습이다. 

서필웅 문화부 기자
어린 시절 영화를 보러 갔던 국도극장과 단성사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기억난다. 이제 그 건물들은 개발 논리에 밀려 사라져버렸고 그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그때,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 바라본 그 극장들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뭔가 아늑하고 따뜻한, 영화의 여운을 더 깊게 해주는 자태가 있었다.

올 연말이면 한국에서도 뮤지컬 ‘원스’가 무대에 오른다. 서울 강남의 대형공연장에서다. 영화가 그랬듯 뮤지컬 역시 음악이 주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잘 살릴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그 공연이 피닉스 극장 같은 고풍스러운 곳에서 열리면 그 맛이 더 살지 않을까.

극장이나 공연장은 단순히 영화나 연극, 뮤지컬을 보여주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요리가 그릇에서 완성되듯 예술작품은 극장이나 공연장에서 완성된다. 감동적인 작품을 더 감동적으로 완성해주는 ‘공연과 영화의 그릇들’, 그 문화적 향취가 넘치던 극장들은 도대체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서필웅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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