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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는 민족감정 아닌 인권·평화 관점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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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07 19:43:13 수정 : 2014-10-08 09: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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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재미 한인 유권자단체 KACE 김동석 상임이사
‘7월30일’은 재미동포 사회에 의미가 큰 날이다. 2007년 7월30일 동포들 힘으로 미국 연방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됐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난 7월30일 미 워싱턴의 한 호텔에 미국 각 지역 한인 풀뿌리 운동가 250여명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여기에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장과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을 비롯해 상·하원 의원 11명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두 ‘사건’을 얘기할 때 한인 유권자단체인 시민참여센터(KACE)의 김동석(57·사진) 상임이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제8회 ‘세계한인의 날’(5일)을 앞둔 지난 1일(현지시간) 김 상임이사를 미 의사당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김 상임이사는 미 의사당을 보면서 2007년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애쓰던 때가 눈에 선한 듯했다. 그는 하원의원들 사무실이 위치한 캐논 빌딩 등을 가리키며 “저 입구에서 의사당까지 100m가 로비 공간이었죠”라고 했다. 의사당과 주변 의회 건물은 모두 지하통로로 연결돼 있다. 의원들은 의사당을 갈 때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볕이 좋을 때에는 지상으로 걸어가는데, 이 시간을 로비에 활용했다고 한다. 그는 “가는 길을 막으면 체포되므로 옆이나 뒤로 따라붙어 얘기를 건넸다”면서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스트리트 로비스트’”라며 웃었다.

-지난 7월30일 행사에 친이스라엘 로비단체인 AIPAC(미국·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 측마저 놀랐다던데.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힘을 어떻게 키우는지 직접 보고 배우려고 2001년부터 회원으로 참여했다. 13년째 나가다 보니 서로 잘 안다. 미국에서 풀뿌리 유권자 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겠다면서 수도 한복판에 모여 행사를 한 민족은 그동안 유대인밖에 없었다. 한국계가 하겠다고 나서니까 AIPAC 관계자들이 그러더라. ‘현역 의원 5명을 행사장에 데려가면 인정을 하겠다’고. 의원들은 의사당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모금행사에 참석하거나 오피니언 리더가 모이는 행사에 연설자로 초청받은 경우가 아니면. 그런데 그날 상·하원 의원이 11명이 참석했다. 상·하원 외교위원장뿐 아니라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초당적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인들을 위해 내가 이렇게 노력했다. 앞으로 이렇게 할 테니 도와달라’고 했다. AIPAC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거지.”

-의원 11명을 행사에 불러낼 수 있었던 힘은.

“2007년 위안부 결의안 통과가 중요했다. 그때까지 미국 정치권은 유대인, 쿠바인, 대만인만 알다가 한국인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걸 계기로 한인이 많이 사는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교민을 20, 30명씩 조직했다. 지역 의원에게 선거자금을 모아주고 지지운동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시카고 등 16개 지역에 풀뿌리 유권자 모임이 조직돼 있다. 그리고 매년 7월30일 위안부 결의안 기념식을 미 의사당에서 해왔다. 위안부 문제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서 의원들과 꾸준히 좋은 관계를 지녀왔다. 올해에는 위안부 문제 외에 한인들 숙원 사항인 한국인 전문직 비자 쿼터 법안을 추가하고 2박3일로 행사를 준비했다. 전국에서 모인 한인 운동가 220명이 함께 의원들을 어떻게 설득할지를 훈련받은 후 의사당 내 자기 지역구 의원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지지 서명을 받아냈다. AIPAC에서 배운 방식 그대로다. 미국 정치인들은 표를 지닌 유권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유권자로서 자기 얘기를 듣고 싶다는데 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한인커뮤니티의 정치적 영향력은.


“일본에 비하면 아직도 안타까운 점이 많다. 일본의 특징은 소리 나지 않게 로비하는 거다. K스트리트(유명 로비기업이 몰려 있는 거리, 백악관에서 북쪽으로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나 AIPAC 관계자들은 ‘일본을 배우라’고 말한다. 일본인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모든 걸 의원이 주도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일본의 로비는 스펀지에 물 스며들 듯한다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모르지만 스펀지를 눌러보면 물이 들어 있듯 어떤 사안을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일본이 들어 있다. 그 점에서는 AIPAC도 마찬가지다. AIPAC은 유대인계 정치인에는 관심이 없다. 유대인 출신과 백인 간에 경쟁이 붙으면 오히려 유대인을 찾아가서 눌러 앉힌다. 백인 정치인은 영원한 유대인 편이 된다. 우리도 그런 걸 배워야 한다. 출세한 한인을 볼 게 아니라 자기 지역 현안을 찾아서 정치인을 찾아다녀야 한다. 민족감정이 아니라 평화, 여성, 인권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7년 전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할 때에는 지금보다 열악했을 텐데.

“위안부 문제는 한인사회가 결속할 수밖에 없는 이슈였다. 거기에 미국 정치 상황이 우리에게 아주 유리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낸시 펠로시라는 여성 하원의장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아주 친했는데 그게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공화당 부시 정권이 이라크 전쟁에 실패하면서 민주당은 2006년 선거에서 이겼다. 일본이 이라크전 비용을 대고 고이즈미 총리는 워싱턴에 오면 늘 부시 대통령과 골프를 쳤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내 외교안보 인사들이 일본에 상당한 불만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인 딕 체니 전 부통령과 관련된 핼리버튼 로비사건으로 워싱턴에서 로비스트에 대한 제약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풀뿌리 유권자 운동을 한 것이다. 2008년 미 대선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이겼다. 내가 보기에 당시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풀뿌리 운동이 힐러리 클린턴의 타운홀 미팅 방식의 운동을 이긴 거라 할 수 있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여성, 인권, 평화에 관한 것이고 한·일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이슈로 접근할 수 있었다.”

-위안부 문제로 한·일관계가 꽉 막혀 있다. 어떻게 보는지.

“한국에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지만 위안부 문제는 여기에 맡겼으면 한다. 정치는 현실인 만큼 국가 경영을 위해선 일본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한국에서 정치인들이 오면 위안부 기림비를 찾으려고 하는데 가지 마시라고 말한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문제로 가면 안 된다. 위안부 문제는 이미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구체적인 인권문제가 됐기 때문에 한국이 나설 일이 아니다.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라도 일본과 외교를 하는 게 당연하다.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에 원칙적인 입장을 밝히는 건 필요하지만 외교관계까지 닫아버리는 건 생각해 볼 일이다. 한·일 간에 풀어야 할 현안도 많을 텐데 위안부 문제는 미국에서 우리 같은 운동가들이 하도록 뒀으면 한다.”

-한국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지.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보면 한국에 섭섭한 게 많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수치심을 내놓으셨다. 할머니들을 잘 보살펴 드리는 건 한국 정부가 할 일이다.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니까 한국에서 오는 정치인마다 마이클 혼다 의원을 만나겠다고 하더라. 혼다 의원은 한국 정치인을 만나면 ‘광주 나눔의 집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다들 ‘안 가봤다’고 한다. 혼다 의원은 ‘그곳을 가보시라. 할머니들이 계실 곳이 아니더라’고. 2008년 함께 갔을 때 한 위안부 할머니가 혼다 의원이 왔다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2층에서 내려오다가 넘어졌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가 배상하기에 앞서 한국 정부가 먼저 잘 보살펴야 한다.”

-미국에서 한인커뮤니티의 힘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점은.

“동포들 각자가 미국의 모범시민이 돼야 한다.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것이다. 다인종사회인 미국에서는 참여해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참여의 핵심은 투표 참여다. 그 이전에 유권자 등록을 먼저 해야 한다. 유권자 등록하고 투표하는 게 미국에서 한 시민으로 인정받고 살아가는 기본 윤리다. 한국에서 정치인이 오면 서로 만나려고 하는 등 한국 쪽 정치를 바라볼 게 아니다. 시민참여센터의 캐치프레이즈가 ‘80·80’이다. 한인 유권자의 80%를 등록시키고 등록 유권자의 80%가 투표에 참여하는 게 목표다. 코리언어메리컨은 코리언이기 이전에 미국인이다. 한국에 있는 분들은 미국 내 한인이 한국을 위해 일해 주기를 바란다. 그건 스파이가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인이 미국에 제대로 정착하고 정치력을 키우면 그게 바로 한국을 돕는 길이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은 절대 이스라엘 얘기를 하지 않는다. 오직 그들은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에만 집중한다.”

대담=박희준 워싱턴 특파원

◆ 김동석 상임이사는… ▲강원도 화천(57) ▲춘천고·뉴욕시립대(CUNY) ▲시민참여센터(옛 한인유권자센터) 설립(1996년)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통과 기여(2007년)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도서관 앞 일본군위안부 기림비 설립(2010년) ▲엘리스 아일랜드상 수상(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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