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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택의新온고지신] 실인실언(失人失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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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13 20:54:50 수정 : 2014-10-13 20: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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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은 품격이다. 개인의 인격이자 한 나라의 국격(國格)이다. 상대에게 복 짓는 말과 저주의 말에는 ‘생명’이 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말의 힘’을 믿었다. 여러 사람이 ‘향가’ 등을 지어 불러 괴질과 왜병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말의 주술성을 그대로 믿는 고대인의 언어관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언어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가령 새해 인사의 덕담으로 ‘금년에 장가를 갔다지’, ‘올해 사업 성공했다지’ 등과 같이 상대가 원하는 바를 기정사실화해서 말하는 것은 ‘말이 씨가 된다’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됐다.

근래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을 증오하는 혐한(嫌韓) 발언이 심각하다. 일부 극우 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일본 재특회(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는 온·오프라인에서 재일 한국인을 상대로 모멸적인 표현과 욕설을 서슴지 않고 있다.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다. 참으로 우려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 정부가 이런 시위를 표현의 자유라며 방관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만일 한국에서 비슷한 혐일(嫌日) 시위가 있다면 일본은 뭐라고 할 건가.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상대의 인격을 생각한다면 조심할 수밖에 없다. 정조 임금이 “사람은 언어로 한때의 쾌감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미천한 마부에게라도 일찍이 이놈 저놈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人不可以口業取快於一時. 予雖於僕御之賤. 未嘗以這漢那漢呼之也)”고 한 바는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일본인들은 위안부, 곧 군(軍) 성노예 같은 자신들이 저지른 반인권적 죄악에 대해 참회를 촉구하는 데 오히려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분간해야 하는 것이다. ‘공자’는 강조했다. “함께 말할 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 말하면 말을 잃는다(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문제는 말에 관한 한 우리나라 정치인 등도 떳떳할 게 없다는 사실이다. 말조심하자.

황종택 녹명문화연구소장

失人失言 : ‘말할 때와 말하지 말아야 할 때를 분간 못하면 사람도 말도 잃는다’는 뜻.

失 잃을 실, 人 사람 인, 言 말씀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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