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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칼럼] 눈 감은 자들의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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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13 20:58:37 수정 : 2014-10-13 21: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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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용예산이 18조원, 결산은 대충대충
2015년 예산안은 의원들 잔칫상
정부가 작년에 예산을 짜놓고도 쓰지 않은 불용예산이 18조원이다. 2012년 불용예산 5조7000억원의 3배가 넘는다. 일반 가정집과 달리 나라 살림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계획대로 한 푼도 차질없이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18조원은 너무 많다. 그만큼 예산이 주먹구구로 편성됐고 집행됐다는 뜻이다. 필요없는 예산을 더 챙겨두는 바람에 예산이 적재적소에 쓰이지 못했고, 사업이나 정책이 추진되지 않아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갈 혜택이 줄었고,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들였다는 얘기다. 쓴다고 썼는데 눈먼 돈으로 전락해 줄줄 새는 혈세 낭비도 적지 않다. 잘못의 경중을 따지자면 중죄도 이런 중죄가 없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국회는 결산 심사권과 예산 심사권을 쥐고 있다. 정부가 예산을 제대로 짰는지, 잘못 쓰지는 않았는지를 감시·감독하고 추궁하고 고치도록 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다. 결산 심사는 국민 세금이 지난 1년간 어떻게 쓰였는지 따지고 평가하는 것이다. 잘못이 드러나면 그런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바로잡아 다음 예산을 짤 때 함부로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가계부를 쓰는 것은 알게 모르게 새는 돈을 막아 규모 있는 살림을 하기 위해서다. 하물며 천문학적 규모인 국가 살림은 말할 것도 없다.

결산 심사가 대충대충이다. 2013년 회계연도 결산안 심사 과정을 들여다보면 기가 차다. 지난해 쓴 예산은 349조원이다. 예결위 결산심사소위는 이렇게 많은 돈의 씀씀이를 점검하는 일을 불과 나흘 만에 뚝딱 해치웠다. 그 나흘도 실제 살펴본 시간으로 따지면 96시간의 절반도 안된다. 6·4 지방선거와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세월호법 논란 때문이라지만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다. 늘 이런 식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부족한 판에 망원경으로 보는 둥 마는 둥 한다. 복습을 게을리하니 새 숙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 국회란 곳이 소리만 크고 말만 번지르르했지 예·결산에 관한 한 게으른 청맹과니 수준이다.

일년치 국가 예산안이 자판기에서 커피 뽑아내듯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 직원 170여명이 6월부터 석 달가량 휴일도 없이 매달려 만들어 낸다. 그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그게 진짜 ‘최선’이었는지 늘 의심스럽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영혼없는 공무원’이 갈수록 늘고 있듯이 정부 예산안 또한 정권이 바뀌고 정부청사가 세종로에서 세종시로 옮겨가도 ‘영혼없는 예산’을 답습하기는 마찬가지다. 장밋빛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근거로 뻥튀기 예산안을 내놓고는 세수 부족 핑계를 늘어놓는 식의 기계적이고 관행적인 숫자놀음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해 1조원가량 삭감됐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경제를 활성화한다며 3.0% 늘리면서도 보육원 어린이들 한 끼 밥값 올리는 데는 부들부들 떤다. 국회가 우습기 때문이다. 잘못이 있어도 제대로 혼나본 적이 없고, 어쩌다 들켜도 머리 한번 숙이면 넘어갈 수 있다.

국회 국정감사가 끝나면 내년 예산안 심사에 들어간다.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지킨다면 심사 기간은 기껏해야 한 달 정도밖에 안 된다. 이 한 달마저도 온전히 예산안 심의에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닳고 닳은 공무원들이 곳곳에 그려놓은 숨은 그림을 국회의원들이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재무 보고서상의 ‘마이너스’를 뜻하는 기호인 ‘델타(△)’를 ‘플러스’ 의미로 알 정도의 실력이면 열공이라도 해야 하는데 공부는 고사하고 뜻도 없다. 결산안 심사를 처삼촌 벌초하듯 하는 터에 예산안 심사라고 정성을 다할 턱이 없다. 책상에 잔뜩 쌓인 예산안 자료 한 번 들춰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아예 눈을 감고 있는 의원들이 너무 많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기는 한다. 지역구 예산을 따내는 일이다. 국민이 보기에 예산은 민생인데 국회의원들 눈엔 잘 차려진 잔칫상이다. 그래서 ‘예산 전쟁’이라고 한다. 결산 심의를 잘 넘긴 공무원들도 올해 예산 심의에 거는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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