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스치는 바람에도… 수줍은 ‘은빛 연정’

입력 : 2014-10-16 21:14:02 수정 : 2014-10-17 00:11:2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억새 손짓하는 정선 민둥산 볏과에 속하는 억새는 우리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년생 풀이다. 억새라는 이름은 다른 풀에 비해 튼튼한 줄기와 날카로운 잎이 있어 ‘억센 풀’이라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9월이면 꽃이 피고, 얼마 후 씨앗이 맺히면 서서히 은빛을 띠기 시작한다. 흔히 이것을 보고 억새꽃이 피었다고 하는데, 실제는 씨앗을 날리기 위한 수염 모양의 은빛 날개가 돋아나는 것이다. 이즈음부터 우리 땅의 산과 들은 은빛 물결로 일렁인다. 

우리나라 5대 억새 군락지 중 하나인 정선 민둥산의 광활한 억새밭은 부드러운 곡선의 능선과 등산로가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정상까지 오르려면 꽤 힘이 들지만, 가을 민둥산은 그 수고를 단번에 보상해 주는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억새는 단풍과 더불어 가을을 상징하는 풍경이다. 단풍은 화려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다. 절정이라고 해 봤자 보통 열흘 안팎에 불과해 그 시기에 딱 맞춰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반면 억새는 가을 문턱에서 초겨울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스듬히 기운 가을볕을 받아 반짝이는 억새의 물결은 두 달 가까이 멋진 정경을 빚어낸다.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1119m)은 포천 명성산, 창녕 화왕산, 밀양 사자평, 장흥 천관산과 함께 전국 5대 억새 군락지로 꼽힌다. 8부 능선에서 꼭대기까지 가득 채운 억새 군락지의 면적이 66만㎢(20만평)에 달할 정도로 광활한 데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굽은 능선이 억새의 물결을 더 수려하게 만든다.

민둥산은 정상 부근에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산세나 계곡이 그리 빼어난 편은 아니지만, 억새 군락지가 있어 가을철 빼놓을 수 없는 산행 명소가 됐다. 민둥산에 나무가 없는 것은 이 일대가 석회암 지대인 데다 화전민들이 밭을 일구거나 산나물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 해마다 산에 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민둥산은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다. 민둥산 등산로는 크게 4개 코스로 나뉘는데, 어떤 코스를 오르든 적잖은 수고가 동반된다. 산 정면인 증산초교 옆에서 시작되는 1코스가 급경사 코스(2.6㎞)와 완경사코스(3.2㎞)로 나뉘고, 측면인 능산마을에서 오르는 2코스(3.5㎞)가 있다. 산 너머 삼내약수 쪽에서도 3.6㎞에 이르는 등산로가 놓여 있다. 급경사 코스뿐만 아니라 다른 코스에도 가파른 구간이 곳곳에 있다. 보통 1코스와 2코스를 많이 오르게 되는데, 급경사 코스는 왕복하는 데 3시간쯤이 걸리고, 완경사 코스와 2코스는 30분이 더 소요된다. 7부 능선쯤의 발구덕 마을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숨을 고르면 정상 바로 아래 제3쉼터까지 다시 평탄한 숲길이 이어진다. 제3쉼터에서 정상까지는 1.2㎞. 숨을 헐떡여야 하는 가파른 구간이 제법 길게 이어진 후 완만한 정상 능선에 오르게 된다.

민둥산서 멀지 않은 화암약수 주변 계곡의 단풍.
능산마을에서 발구덕 마을까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시멘트 도로가 연결돼 있으나 가을 억새가 한창인 ‘민둥산 억새꽃 축제’ 기간에는 이 도로가 엄격히 통제된다. 발구덕 마을에 차를 세울 만한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축제는 26일까지 이어지니 그때까지는 등산로를 따라서 산에 올라야 한다.

8부 능선부터는 산 아래로 펼쳐지는 전망이 일품이다. 무릉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함백산, 가리왕산, 백운산, 태백산이 능선이 물결치듯 이어진다. 정상 능선에 오르면 본격적인 억새밭이 시작된다. 어른 어깨 높이까지 자란 광활한 억새밭 사이로 유려한 S자 곡선을 그리는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이길을 따라 걷는 것은 우리 땅 가을 억새여행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억새밭은 해가 기우는 늦은 오후에 가장 아름답다. 이때 역광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며 바람결에 일렁이는 억새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그다음 해부터는 가을에 억새밭을 찾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

민둥산 주변에는 단풍 명소도 적지 않은데, 민둥산을 내려와 약간 노곤한 몸을 이끌고 가볍게 들를 수 있는 곳이 화암약수 일대다. 작은 계곡물이 흐르는 화암약수 주변은 이 일대에서 알아주는 단풍명소다. 지난주 이미 절반쯤의 나무가 물들기 시작했으니, 이번 주말이면 절정기에 접어들 것이다. 오토 캠핑장 시설도 갖춰져 있어 붉은 단풍나무 아래 텐트에서 잠을 청하는 것도 각별한 맛이 있을 것이다.

정선=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세계섹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