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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반겨준 천사 같은 아이 고양이 할머니… 행복한 일상 선물

관련이슈 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입력 : 2014-10-16 21:30:55 수정 : 2014-12-22 17: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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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35〉 낯선 생활이 익숙해지는 날들
도미니카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산토도밍고에서는 집을 얻어서 살았기 때문에 아침에 일하러 나가는 것만 빼고는 하루하루 비슷한 생활이 계속됐다. 집을 얻을 때에는 부동산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직접 돌아다니는 게 좋다. 부동산에는 한 달치 월세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내야 한다. 여행자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맘에 드는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빌려주다’라는 뜻의 ‘알킬라르(Alquilar)’라고 적힌 작은 패널이 붙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집의 문을 두드리면 집주인이 직접 집을 보여준다. 계약을 1년 단위로 해주는 곳도 있고, 한 달 단위로 해 주는 곳도 있다. 한 달 단위로 빌려주는 곳은 선지급금이 있지만, 보증금도 한 달치만 내면 된다.

동네 아이들과는 더 자주 어울려 놀았다.
호텔에 머물며 며칠 동안 집을 보러 돌아다녔다. 마땅한 집을 구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집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집을 고를 때 또 중요한 점은 그 주변이 위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머물렀던 집은 이렇게 찾았다. 보통 300달러 정도면 적당한 집을 빌릴 수 있다. 그러면 호텔보다 훨씬 저렴하게 머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해 먹고, 동네로 나가 본다. 이제 이웃이 된 사람들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온다.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 댁은 꼭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할머니는 혼자 살며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고 있다. 할머니는 흔들의자에 앉아 있다가 내가 지나가면 일어나 인사를 하러 나온다. ‘베소(beso)’는 볼에 입맞춤하는 그들의 인사 방식인데, 친할수록 여러 번 한다. 할머니와 베소를 나누면, 할머니는 고양이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고양이.
오늘은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할머니와 인사를 하고 가는 곳은 여자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파는 중고가게다. 내가 안 쓰는 물건을 판 적도 있고, 옷이나 귀걸이는 이곳에서 사기도 했다. 가끔은 소파 같은 가구를 팔기도 한다. 가게가 작아서 큰 물건들은 길거리에 내놓고 팔기도 한다. 중고가게는 매일 찾아도 매일 다른 물건이 있어서 항상 들르게 된다.

또 어떤 집을 지날 때 새끼 고양이들이 뛰놀고 있길래 고양이들과 놀았더니, 아줌마가 나와서 “키에레스 우노?(Quieres uno?)”라고 하신다. 한 마리 원하느냐고 물어본 말인데, 무턱대고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줌마가 비닐봉지를 가져오라고 딸한테 시켰다. 노란 비닐봉지를 가져와서는 새끼 고양이를 담으려고 했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은 하면 안 되기에 아쉽지만 매일 와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콜마도도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곳이다. 콜마도 앞에는 사람들이 언제나 모여 있다. 대부분 도미노 게임을 즐기며, 가끔 빙고 게임도 한다. 도미노 게임은 점이 0부터 6까지 표시된 도미노를 똑같이 나눠 갖고 먼저 다 내려놓으면 이기는 게임이다. 같은 숫자를 맞춰서 내려놓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게임이다. 최대 4명이 하는 게임으로 콜마도에서는 도미노판과 의자를 제공해 준다. 

동네를 지날 때면 이웃과 ‘베소’를 나누며 이야기를 한다.
도미노판에는 맥주컵을 꼽는 곳이 있어서 언제나 맥주를 마시면서 게임을 한다. 도미노의 가장 큰 재미는 도미노를 탁 치면서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내기를 하는데, 이건 사람마다 다르다. 돈이 직접 오가는 곳이 있고, 장부에 적는 곳이 있다. 공책에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히 적어 놓은 장부는 끝나지 않는 게임을 말해준다. 이건 사람들이 정을 나누는 작은 모임일 뿐 도박은 아니다. 우리나라 어른들이 장기나 바둑을 두는 것과 비슷하다. 가끔 자리가 나면 나도 한자리 차지하고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다.

나의 동네는 바닷가와 가깝다. 걸어서 20분도 안 걸릴 거리지만, 더워서 쉬엄쉬엄 가기에 30분은 소요됐다. 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는 큰 파도를 몰아오기도 하고, 따뜻한 햇볕을 담아 보여주기도 한다. 그곳에 가니 이미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이 있다. 낚시하는 몇몇 아저씨들이 줄지어 바위에 앉아 있다. 물고기 한 마리 못 잡은 아저씨들은 낚싯대를 바다에 던져 놓고 무작정 기다릴 뿐이다. 한 남자가 나에게 줄낚시를 줘 나도 낚시를 한번 해봤다. 나뭇가지에 낚시 바늘을 매달아 놓았을 뿐이다. 그래도 바다에 한번 던져놓고 기다렸다. 저 바다를 보면서 한참을 바라보며 낚시꾼 흉내를 내본다. 여기 있는 사람들처럼 바다를 바라보기만 한다. 낚싯대의 움직임을 보는 게 아니라 바다만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이런 날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치안이 불안한 이곳의 모든 문에는 창살이 설치돼 있다.
도미니카공화국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모든 창문에 창살이 있다. 방법용으로 설치해 놓은 이 창살이 때로는 사람을 가둬 놓는 것처럼 보인다. 베란다에도 모두 창살을 해놓았다. 그만큼 도둑이나 강도가 많다고 한다. 답답해 보이는 창살을 보며 치안이 좋지 않다는 말이 실감난다. 그래도 내가 머물었던 동네는 안전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중산층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한 블록만 지나면 사정이 달라졌다. 낮에 걸어가면서 봤던 곳인데, 동네 사람들이 밤에는 가지 말라고 한다. 사람들이 점점 내 안전을 걱정해주고 나를 챙겨줬다.

그래도 낮에 다니면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낮에도 위험지역에서는 총기사건까지 발생한단다. 이런 위험한 곳만 가지 않는다면 괜찮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여행을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도전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이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원칙과 범위를 정해놔야 한다. 무턱대고 여행을 다녔던 이십대와는 달라진 점이다.

이곳에서 생활을 하며 처음에는 어색했던 것들이 점점 친숙해져 갔다. 아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단골집이 생기고, 물어보지 않아도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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