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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개헌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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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16 20:45:03 수정 : 2014-10-16 22: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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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은 김무성 대표 친박 막을 재간 없어
시기상 개헌은 필요 나라 거덜내지 않도록 차분하게 진행해야
“그보다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44년 원로원 의원 14명이 카이사르의 몸 23군데를 찌른 뒤 브루투스가 시민들 앞에서 외친 말이다. 당시 로마는 원로원 주도의 정치 체제가 근 500년간 지속된 상황이었다. 카이사르는 로마제국의 경계선을 확정하자 수성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제국을 통치하기엔 공화정이 적합지 않다고 본 것이다. 브루투스는 로마의 번영을 이끈 공화정을 유지하고자 했다. 싸움의 명분은 “무엇이 로마를 위한 길이냐?”였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개헌논란을 2000여년 전 로마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내용은 차치하고 등장인물의 면모, 각오는 그 못지않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어제 중국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론이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강도가 높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개헌논의로 국가역량을 분산시키면 경제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이 애써 그어 놓은 선을 훌쩍 넘어버렸다. 그것도 잉크도 마르지 않은 열흘 만에, 그것도 다른 나라에 가서. 개헌전은 이제 시작됐다.

김 대표가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국회 내 개헌 찬성파의 득세가 그 배경일 수 있다.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 참여 의원은 최근 155명으로 불었다. 개헌안 발의 기준을 넘어선 숫자다. 얼마 전 한 방송사 조사에서 의원 231명이 개헌에 찬성했다. 재적 3분의 2인 헌법개정 의결 정족수를 넘어선다. 개헌론 전개 방식도 꽤나 조직적이다. 김 대표가 굳이 주중 대사관 국정감사차 베이징을 방문한 개헌전도사 이재오 의원과 방중 일정을 같이한 것도, 여당 사무총장이 대표와 손발을 맞춰 군불을 땐 것도 그렇다. 이 의원은 박 대통령이 개헌논의를 막자 “국회 개헌논의를 행정부가 하지 말라 간섭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대표가 나서기 하루 전 이군현 사무총장은 “지금이 개헌론 공론화의 적기”라고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당장 큰 선거가 없고 대권주자군이 명확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도 적극 화답했다. “갈등의 정치를 바꾸려면 개헌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 사무총장과 우 원내대표는 개헌추진 모임의 여야 측 간사다. 이들은 12월쯤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할 태세다. 여당 대표가 둑을 터뜨렸으니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백영철 논설위원
친박(친박근혜)세력은 “정부가 한창 일할 시기에 개헌 논쟁이 붙으면 나랏일은 언제 하나”라고 펄쩍 뛰고 있다. 맞는 말이다. 모든 일은 다 시기가 있다. 정부가 개헌논쟁에 휘말려 일을 못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개헌에도 시기가 있다. 지금이 적기라는 말도 맞다. 1987년 이후 그 어떤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한 것을 보면 한국정치의 지리멸렬은 사람만의 탓이 아니다. 제도를 바꿀 때가 된 것이다. 각국은 경제 안보 등에서 생존 차원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한순간 기우뚱하는 데서 장기적 안목은 절실해진다. 대북 정책도 긴 호흡으로 가지 않으면 냉탕온탕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5년 단임제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 책임을 지지 않는 데다 단기실적에 집착하다 보니 성공하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는다. 최고 지도자가 잘하면 8년이 아니라 12년이라도 하면 왜 안 되겠는가.

개헌논의에서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 누구든 권력구조에 대한 이해타산을 버려야 한다. 여야는 대체로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책임제 등 유럽식을 선호하고 있다. 국회 권한을 더 키우는 쪽이다. 동의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모든 것을 테이블에 올리고 어느 쪽이 국민과 나라를 위한 길인가, 그것이 우선적인 명분이 돼야 한다. 나라를 거덜내지도 경제를 멍들지도 않게 하면서 차분히 진행해야 한다.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처럼 죽고 살기는 곤란하다. 카이사르는 지고도 이겼다. 그는 로마사의 위대한 설계자가 됐다. 한국에도 위대한 설계자가 탄생할까.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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